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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23] 중국은 왜 ‘조선 인민의 복지’를 주장하나

바람아님 2016. 3. 2. 00:17
[J플러스] 입력 2016.02.28 22:57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중국은 실리를 탐한다. 이를 보며 혹자는 중국이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구나 하며 혀를 찬다. 그러나 중국이 실리를 취하기 위해 명분을 버리는 건 아니다.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선 오히려 더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론을 한 곳으로 모아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미가 합의한 대북 제재 방안에서도 우리는 중국의 그런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제재 방안은 역대 최강이란 평가를 듣는다. 제대로만 실행되면 북한이 핵 개발은커녕 북한이라는 국가 유지 자체에 타격을 받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트럭 한 대도 돈 되는 건 북한으로 못 간다’며 ‘모든 화물 검색 의무화’ ‘항공유·로켓연료 공급 금지’ ‘광물자원 수출 금지’ ‘2000달러 이상 물품은 사치품으로 규정해 금수’ 등 촘촘하게 북한의 현금 수입원을 차단하고 있다.

관건은 중국이다. 제재 이행 여부가 핵심인데 이에 대한 키는 중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노련한 중국은 제재 방안을 마련하면서 자신의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북한 정권의 숨통을 조이는 손아귀의 힘을 자신이 조정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비결은 ‘조선(북한) 인민의 복지’라는 문구에 담겨 있다.

이는 중국이 연초 북핵 위기가 터진 뒤 일관되게 주장해온 말이다. 북한의 나쁜 행동에 벌은 줘야 하지만 북한 주민의 복지까지 손상을 받아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이번 결의안을 마련하면서 자신의 이 같은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대 중국 최대 수출 품목인 광물자원이 북한 주민 생활의 필요에 따른 것이면 제재를 피해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렇다면 그 광물자원 수출이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나.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중국이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사회가 대 북한 제재의 촘촘한 그물을 펼쳤지만 그 그물 사이의 구멍은 있게 마련인데 그 구멍의 크기를 넓혔다 좁혔다 할 수 있는 건 결국 중국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이번 유엔 결의안 채택으로 북·중 관계가 손상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생계형 무역 거래까지는 막지 않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북한 주민의 복지는 고려하자’는 중국의 주장은 중국이 고심해 만든 논리다. 여러 함의가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해서다. 북한 주민의 복지는 살피겠다는 말에선 김정은과 김정은을 둘러싼 북한 권력층의 앞날에 대해선 그게 어떻게 되건 말건 중국은 모르겠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불장난을 일삼는 북한 지도부와 이에 따라 애꿎게 피해를 보는 북한 주민과는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압박이다.

다음은 국제 사회에 대해서다. 잘못된 행동을 거듭하는 북한을 중국도 더 이상 감싸기는 어렵다. 혼을 내줘야 한다. 한데 무작정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방안에 따라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속도 조절을 위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국제 사회에 대한 호소로 ‘북한 주민 복지’를 주장하는 것만큼 설득력이 있는 게 없다는 판단이다. 여기엔 인도주의적 정신이 흐른다. 중국 입장에선 이런 주장을 하는 중국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여겨질 것이다. 중국 인민들에게도 체면이 선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 주민의 복지를 외치는 정작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아직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 붕괴 시 밀어닥칠 혼란이 중국 동북지방을 흔들어 중국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할 것이고 또 만약 한국 주도로 통일되면 미군이 압록강까지 오게 되는 것인지 등 따져봐야 할 게 많다.

아직은 중국의 국력이 이런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본다. 자연히 중국의 힘이 더 커지기 전까지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바란다. 이 같은 여러 가지 고려 하에 김정은 정권에 일정한 압박을 가하면서도 북한 전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제재는 피하고자 하는 고심 끝에 내놓은 게 바로 ‘북한 주민 복지는 챙겨야 한다’는 논리로 보인다.

중국은 무엇이 북한 주민 생계형 무역 거래인지에 대한 자의적인 잣대를 갖고 북한을 압박하면서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내려 할 것이다. 왕이 부장이 이미 제기한 대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무엇이 북한 주민 생계형 거래인지를 판단하는 데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역대 최상이라는 한·중 관계란 말을 다시 믿어보고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활용하는 등 모든 채널과 노력을 다 경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에서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중국이 어떤 속셈을 갖고 말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북한 주민의 복지’ 운운하는데 우리가 이 같은 명분 싸움에서 뒤져서는 결코 안 된다.

지금은 제재 국면으로 그런 말을 할 단계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재 이후 전개될 국면에 대해선 우리가 치밀하고도 정교한 준비를 통해 미·중을 설득하며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