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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마지막 직장서 눈물 흘리는 늙은 경비원의 哀歌

바람아님 2016. 11. 25. 00:36
조선일보 2016.11.24 14:18

최근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막말을 하거나 때리고, 심지어 담뱃불로 지지기까지 하는 ‘갑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고령자가 대부분인 경비원에게,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근로자에게, 그처럼 터무니없이 대하는 일이 빈발할 정도로 막돼먹은 사회로 가고 있는 걸까.

조선닷컴은 최근 15일 동안 수도권 아파트 경비원 20명을 만나 실제 상황이 어떤지 얘기를 들어봤다. 무작위로 아파트 경비실을 찾아가 경비원을 만났는데, 모두 60대 이상이었다. 65세 이상이 3분의 2에 달했고, 그중 절반은 70대였다. 이들에겐 대부분 인생의 마지막 일자리였다.


취재팀이 만난 20명 중 절반 정도는 아예 경비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길 거부했다. 취재에 응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스런 기억을 한두 가지 이상 갖고 있었다. 주민에게서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례도 많았지만 그보다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든 건 열악한 고용 조건과 근무 환경이었다. 시스템이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부당하게 막 대하더라도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어 움쩍달싹 하지 못하는 처지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경비원 A씨: “경비원은 주민 지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개XX, 주민은 ‘황제’”

6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A(71)씨는 “우리는 (주민이) 이상한 지시를 해도 무조건 해야 하는 개XX”라며 “(지시를) 거부하면 잘린다”고 말했다. 그는 경비실 밖을 지나가는 주민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휴대전화기로 음란 동영상을 나에게 보여준다. 내 나이에 그런 게 싫어서 자리를 피하면, (내가) 술을 마셨다고 관리사무소에 거짓으로 일러바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일로 두 차례나 사표를 써야 했다. 최종적으로 수리되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억울함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주민들에게 당한 수모는 그뿐 아니었다. “아파트단지 내 불법 주차로 경고장을 붙이면 (주민이) 멱살을 잡고 때린다. 재활용품을 아무렇게 버리는 주민에게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누구한테 아줌마라 부르느냐. 사모님이라고 불러라’는 항의를 받았다. 애완견 배설물을 치워달라고 하면, ‘아저씨가 하는 게 뭐가 있느냐’며 배설물을 치우게 했다. 우린 경비가 아니라 ‘머슴’이고, 주민은 ‘황제’다.”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경비원 B씨:“집값 떨어졌다고 우리에게 화풀이도”

1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B(61)씨는 지난 7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불법 주차된 차 주인에게 전화했더니, 처음엔 “무슨 일이십니까?”라며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B씨가 “경비”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돌변했다. “네가 뭔데 차를 빼라고 해. 여기 사는데 거기 주차하는 게 무슨 문제야? 경비 주제에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30분간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B씨는 “집값이 내려가면 주민들이 경비원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청소 등 사소한 것을 문제삼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새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에게 대우받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지은 지 3년 이내의 아파트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말이 경비원들 사이에 떠돈다고도 했다. B씨는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집사람이나 자식에게 얘기할 수도 없고 마음 속으로 삭일뿐”이라고 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6개월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C(67)씨는 “한 단지에 주민 3~4명은 꼭 반말을 한다. 10~20살 어린 주민이 ‘어이 아저씨, 이것 좀 해’라고 하면 모멸감을 느낀다”고 했다.


◇경기도 오산시 아파트 경비원 D씨:“나를 때린 주민, 2심서 집행유예로 풀려날까 걱정”

올해 1월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D(73)씨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술에 취해 거의 매일 욕을 하며 괴롭히는 주민이 있었다. 그 사람은 D씨가 경비실에서 잠깐 졸고 있는 모습을 휴대전화기로 촬영하고선 “너, 내일 모가지다”라고 협박하기 일쑤였다. 급기야 이 주민은 D씨를 때리기까지 했다. D씨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D씨는 “그 사람이 지인에게 출소하면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데,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얼마나 괴롭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 경비원 E씨:“휴식 시간은 돈 안 주려고 만든 것”

경비원들을 만나 보니, 폭언·폭행을 견디는 것도 힘들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고용 불안이 더 큰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E(65)씨는 24시간 맞교대 방식으로 일한다. 24시간 중 휴식 시간은 점심·저녁 각각 1시간, 야간 4시간30분이다. 임금은 휴식 시간 6시간30분을 뺀 17시간 30분 치만 받는다.

“6시간30분 휴식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휴식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에도 외부인이 오면 방문권을 지급해야 하고, 누가 찾으면 또 가봐야 한다. 휴식 시간은 돈을 안 주기 위해 만든 시간일 뿐이다. 24시간 맞교대 시스템을 3교대로 바꾸고, 휴식 시간도 좀 개선됐으면 좋겠다.”


그는 6.6㎡(2평) 남짓한 경비 초소 구석에 있는 탁자를 가리키며 “다른 경비초소는 3.3㎡(1평) 정도여서 쉴 때 바닥에 웅크리고 자는데, 여긴 휴식 시간 때 탁자에 누워 잘 수 있다”며 “다른 경비원들이 여길 ‘호텔’이라고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아파트 경비원 F(65)씨도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쉬는 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다. 관리소장이 ‘점심 시간에도 경비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라’고 해 제대로 쉬지 못한다. 경비실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사람 대접 못 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

이혜수 서울노동권익센터 법률상담팀장는 “야간 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도 하는데, 고령자들에게 24시간 경비를 하도록 하는 우리 사회가 좀 잔인한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화성시 아파트 경비원 G씨:“이유 없이 해고당해, 노동부에 진정 냈더니 회사서 회유”

경비원들은 고용이 불안하니 주민이나 관리소장, 경비용역회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항의를 못하고 있었다. G(73)씨는 작년 경기도 한 아파트에 일한 지 6개월도 안 돼 해고 통보를 받았다. 밤에 경비실에 있는데, 관리소장이 찾아오더니 갑자기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한 것이다. 해고 사유도 듣지 못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서를 제출하자 경비업체서 취하해 달라고 회유했다”며 “진정 처리도 제대로 안 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취하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아파트 경비원 H씨:“수당 못 받아도 해고될까 봐 얘기 못해”

H(61)씨는 “당초 계약할 때 주기로 했던 수당만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비용역업체와 계약할 때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은 가욋일이니 별도 수당을 주겠다’고 했다. 처음 두세 차례는 수당을 주더라. 근데 이후엔 수당을 주지 않길래 항의했더니, 회사서 ‘주민 서비스 업무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다. 계약서에 없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하더라. 더 얘기하면 해고될까 봐 무서워서 얘기를 못 했다.”


경비원 E씨도 같은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경비회사가 몇 개월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입바른 소리 하면 바로 자른다”며 “경비원은 찍소리 않고 주민·관리소장·경비회사 지시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비원 D씨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바로잡을 길이 막혀 있다”고 했다. “24시간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해 자고 일어나면 오후 2시쯤 된다. 뭔가 부당한 일을 당해서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충분치 않다. 공무원 생활 30년 한 나도 이런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D씨는 “요즘 아파트 주민들은 관리소장을 거치지 않고 경비회사에 바로 전화해 경비원에 대한 불만을 말한다”면서 “경비회사 입장에선 노인정 등에서 언제든 다른 인력을 수급할 수 있으니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자른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 경비원 I씨:“아파트 비리 때문에 더 힘들어”

아파트 비리 때문에 경비원들의 임금과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4년차 경비원 I(73)씨의 경험담이다. “입주민대표회와 관리소장, 경비용역업체간 삼각 비리 때문에 더 힘들다. 과거에 일했던 아파트 관리소장이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기숙사에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말해 중고 냉장고를 구해 줬는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몇 달 뒤 그 아파트에서 잘렸는데, 새 냉장고를 사줬으면 계속 일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경비업체 관계자가 입찰 관련해서 아파트 동대표에게 현금 500만원을 전달하는 것도 목격했다”며 “나도 명절이 되면 관리소장에게 양주 등을 갖다 바쳤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8년차 경비원 J(65)씨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입주회에서 공개 입찰을 하면 경비회사들이 낙찰받기 위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이는 경비원 임금 삭감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시 아파트 경비원 신씨:“경비는 인생 마지막 직장,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일하는데 슬퍼”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환경에도 고령의 경비원들이 계속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에서 만난 경비 경력 12년차 신동복(68)씨는 넉 달 전 아파트 단지에서 난동을 부리던 취객을 말리다가 봉변을 당했다. 신씨는 당시 취객이 아파트 주민인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는 “경비회사서 ‘절대 주민에게 손대면 안 된다’고 해 가만히 있었다. 주민에게 맞을 경우 CCTV 앞에서 맞으라고 할 뿐이다”고 했다.


취객은 주민인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원래 무릎 관절이 안 좋은데 맞으니 더 아팠다”고 했다. 그는 “그만 두고 싶어도 못 나간다”고 했다. “경비는 인생 마지막 직장이에요. 늙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돈이 필요하니까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이 일을 하는데 슬플 때가 많아요.”


A씨는 “아들은 ‘경비가 뭐가 힘드냐’고 하고, 아내는 ‘경비원 그만두면 이혼한다’고 한다. 이 나이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다”며 “오갈 데가 없어서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I씨는 “다들 빚도 조금씩 있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으니까 이 나이에 일하는 것”이라며 “이 아파트 단지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짓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 경비원 K씨:“주민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려는 노력 필요”

물론 아파트 경비원들이 매일 주민들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들을 잘 대해준다. 소수의 ‘갑질 주민’이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취객에게 봉변을 당했던 신씨도 아파트 주민들이 나서 경찰에 신고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몇몇 못된 사람이 괴롭히지만 좋은 주민이 훨씬 많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에게 폭언을 들었다고 털어놓은 B씨도 “머슴 대하듯 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다”며 “잘 대해주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경비원 K(72)씨는 “경비도 서비스업이라 주민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며 “경비원들이 주민들에게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비업체와 근로 계약을 맺고 경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비원들에게 주민들이 ‘갑질’을 하는 이유는 뭘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비원은 계약 관계에 따른 근로자일 뿐 ‘종’이 아니다”며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화에는 힘없는 노인에 대한 차별과 천민자본주의, 공고한 계급 질서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권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전가영 변호사는 “그간 노동 당국은 경비원 업무가 ‘감시·단속’이라고 보고 휴식 시간에도 일할 수 있다고 봤다”며 “최근 경비원 업무가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비원도 일반 노동자처럼 식사·휴게 시간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동 당국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또 “서울시는 지난 9월 아파트 평가 항목에 경비원 처우 개선 및 고용 안정을 포함하는 조례를 공포했는데, 다른 지자체에도 확대돼야 한다”며 “경비원도 아파트 주민과 관리소장 등과 함께 아파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