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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8] 화이트헤드

바람아님 2013. 12. 14. 11:26

(출처-조선일보 2011.02.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오늘은 20세기 논리학과 과학 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제자인 러셀과 함께 '수학의 원리'를 저술하며 수학자로 출발했지만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참으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 흥미로운 철학자로 남아 있다. 이번 기회에 그를 그저 이름으로만 기억하지 말고 그의 책을 한 권 탐독할 것을 권한다. 평생을 화이트헤드 연구에 바친 연세대 철학과 오영환 명예교수님과 한국화이트헤드학회의 덕택에 그의 글들은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나는 유학 시절 수업시간에 그의 '과학과 근대세계'를 읽었고 내친김에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도 조금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후자를 집어 든 이유는 제목이 그냥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과 무엇'식의 책 제목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다. 이른바 오페론 이론으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함께 수상한 프랑스의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Chance and Necessity)'과 프랑수아 자콥의 '가능과 실제(The Possible and the Actual)'는 내가 정말 감명 깊게 읽은 과학책들이다. '무엇과 무엇'식의 책 제목에는 마침표를 찍는 듯한 지적 단호함이 묻어난다. 과정, 실재, 우연, 필연, 가능, 실제―대충 이 정도면 거의 모든 학문을 망라하리라.

화이트헤드실존하는 모든 것은 그저 물질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실재는 과정이다"는 유명한 언명을 남겼다.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특별한 영향을 끼친 학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정철학 또는 유기체철학으로 규정되는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다윈의 냄새가 진동한다. 나는 실재하는 변이(variation)의 중요성으로 플라톤의 이데아(idea) 사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준 다윈이 없었더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떠들어대며 산다. "무지가 용맹이다"는 세속 언명에 기대어 용기를 내어 말하자면 내 눈에는 자꾸만 다윈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우뚝 서 있는 화이트헤드가 보인다. 아무래도 그의 다른 책들도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