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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되살아나는 제국

바람아님 2019. 7. 9. 04:51


중앙일보 2019.07.08. 00:08

 

넋 놓고 당한 한국은 혼수상태
과거사 들출수록 제국 향수 자극
일본 '안보'는 공격 논리를 내재
대통령 용단만이 출구 만들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올 것이 왔다. 일본의 요격미사일은 정확하고 치밀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경제의 급소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했고, 제조 공정에 소요되는 일본산 독과점 상위 품목 3개를 특별 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허가를 받아도 90일이 소요되고, 만약 금수조치가 떨어지면 반도체 생산은 전면 중단된다.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재고는 대체로 2개월 안팎, 일본산 정밀 화학 재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걸 노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70%를 점하는 반도체 세계시장에 물류대란이 발생한다. 세계의 비난까지도 멀리 내다보았을까. 경제로 타깃을 전환한 일본의 정치보복은 정말 쓰리고 아프다.
        

넋 놓고 일격을 당한 한국은 중얼중얼 혼수상태다. 사드 문제로 중국 사업을 철수한 롯데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일본의 결정타를 맞았으니 정신이 혼미할 수밖에. 국무회의에서도 뾰족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으며, 관계부처 장관들은 기업인들을 앞세워 뒷북치기 진상파악에 나선 정도다. ‘유치하고 속 좁은 일본!’ 이빨 사이로 아무리 곱씹어봐야 현실은 냉혹하다. 강제징용의 법정 다툼에 대해 ‘무역제재’로 대응한다는 일본의 공공연한 엄포를 한국이 허언(虛言) 따위로 치부한 대가치고는 치명적이다. MB 정권 이후 지속된 ‘10년 냉골’이 급기야 적대관계로 악화됐다. 박근혜와 아베가 서로 시선을 피하는 장면이 아직 또렷한데, 현 정권 대법원에서는 아예 징용 일본기업의 한국자산 압류를 선언했다.


아베 총리의 말이 걸린다. 핵심품목 수출규제가 경제보복은 물론 정치보복은 더구나 아니란다. 그것은 ‘안전보장상의 수출관리 차원’이며, 3개 품목과 관련한 ‘군용 용도’라는 안보논리를 끌어댔다. 이건 더 큰 문제다. 안보 우려로 금수조치를 취한다? 아베와 일본 정부에 한국은 ‘가상 적국’이자 한·미·일 군사공조체제가 깨졌음을 확증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식민사를 들춰 반성의 념(念)을 상기시킬수록 일본인들은 제국의 향수(鄕愁)로 귀환한다는 사실을 인륜적 양심에 기대 무시했던 것이다. 제국의 향수, 그 한복판에 놓여 있는 정서가 바로 안보(安保)다. 안보는 섬나라 일본을 제국으로 키운 집단공포심이다.


메이지유신 사상가들은 일본을 신국(神國)으로 정의했다. 해 뜨는 신국은 대륙에서 떨어져 망망대해에 놓여 있다. 고립과 공포감. 여기서 방어 논리가 발현했다. 우선 바다를 막았지만(海防論) 그걸로는 불안했다. 역으로 공격과 점령이 답이었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그리곤 대만과 한반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베의 정신적 스승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조선 문제를 대놓고 얘기했다. ‘우리가 쳐들어가지 않으면 곧 조선이 몰려 온다’라고. 조선은 쇄국정치로 문을 닫아걸 때였다. 육군 군벌의 수장 야마카타 아리토모는 1890년 제국의회 연설에서 ‘이익선’인 한반도를 점령해야 ‘주권선’이 안전하다고 역설했다. 안보 논리는 곧 ‘미개국’ 조선 계도의 사명이 됐다. 한국 반도체 공정 필수 품목을 금수조치해야 일본 안보가 확보된다는 논리는 조선을 공격해 안보를 확증한다는 제국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일본이여, 국가가 되자’는 구호는 1970년대 전후 패전 의식에 대한 씻김굿이었다. ‘일본이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되자!’ 아베가 외치는 이 구호는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휩쓸고 내년 헌법 개정까지 밀고 갈 것이다. 레이와(令和) 시대의 개막에 제국의 향수를 피워 올렸다. 이런 상황에 한국 정부의 ‘과거사 정치’는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끌어내기는커녕 ‘제국 향수의 정치화’를 자초했다. 중국의 센카쿠 열도 점령에 일본은 안보를 외치지는 않았다.


식민배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으로 입막음해 온 일본에 개별 청구권은 아직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은 어쨌든 ‘믿을 수 없는 국가’가 됐다. 이 어설픈 양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우회로가 보인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20년 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같은 멋진 드라마도 있었다. 오부치 일본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을 약속했다. 이명박 정권은 국고로 징용보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했다. 역사적 채권국이 신뢰채무국으로 낙인찍힌 저간의 상황은 무엇 때문인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종전일 때마다 피해국 위령탑에 엎드려 사죄하는 독일과, 원폭 투하 원점에서 피해자 심정을 되새기는 일본의 본성은 다르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대책이 없는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단호한 외길을 버리는 게 우선이다. 여야가 추천하는 노련한 역사, 외교 책사들로 비상전문가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서 도출된 대안을 대통령이 무조건 수용하는 게 수순이다. 아베 총리를 만나야 한다. 제주도도 좋고 쓰시마도 좋다. 대법원이 내린 결정을 어쩔 수 없다고 방관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특별법도 있다. 출구 없는 상황, 대통령의 용단만이 길을 뚫는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