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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꽝꽝 얼어 더 즐거운 산길 물길 바람길

바람아님 2014. 1. 23. 19:35
   


눈과 바람의 고장 평창에서 만나는 한겨울 풍경의 진면목

눈꽃 대신 상고대(서리꽃)를 만나기 위해 오른 아침 산, 제대로 바람을 맞았다. 빈 가지 앙상한 나무들만 매서운 바람 속에 흔들렸다. 첩첩 산줄기도, 차갑고 높은 하늘도 모두 칼바람을 휘두르며 다가와, 정말 눈물 없이는 바라보기 어려웠다. 바람 맞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구경꾼을, 바람 안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아버지 나무들이 굽어보신다. 바람 견디며 나아가려면 순응해야 한다는 걸까. 수백년 묵은 주목의 가지들이, 일제히 팔을 들어 바람 불어가는 쪽을 가리켰다. 그쪽은 하산길이었다. 바람과 추위 속에서 한겨울 풍경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눈과 바람의 고장' 평창에서, 꽝꽝 얼어붙어 더 즐거운 산길·바람길·물길을 거닐고 왔다.

 

발왕산 스키슬로프 옆 눈꽃길


발왕산(發王山·1458m).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옛 도암면)과 진부면 사이에 솟은 산이다. 이 산 북쪽 사면에 1953년 용평스키장이 들어서면서 흔히 "용평스키장에 발왕산이 있다"고 할 정도로 스키장 유명세에 가려진 산이지만, 남한에서 열번째로 높은 산으로 주변 전망이 빼어난 고봉이다. 이 산에 여덟 왕이 쓸 묫자리가 있다 하여 팔왕산으로 불리다 발왕산이 됐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일제강점기에 '임금 왕(王)' 자를 '성할 왕(旺)'으로 바꿨으나, 최근 바로잡았다. 조선 후기 <대동여지도>나 <조선팔도지도> 등엔 발음봉(鉢音峰)으로 표기돼 있다.

정상 주변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붉은빛 도는 아름드리 고목들. 가지는 대부분 매서운 바람에 시달려 부러지고 닳아빠진 모습들이지만 줄기는 곧고 바르고 굳세다. 오대산·황병산·계방산, 가리왕산, 두타산…, 사방팔방으로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산줄기들이 자아내는 장쾌한 풍경은, 곳곳에 우뚝우뚝 솟은 주목들에 힘입은 바 크다.

정상 부근(500m 거리)에 용평스키장 최상급자 코스의 곤돌라가 닿는 드래곤피크가 있다. 발왕산 산행객들은 대개 용평리조트나 버치힐리조트 쪽에서 2시간30분~3시간 걸어 정상에 오른 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거나, 곤돌라로 올라와 두 코스 중 하나를 골라 하산한다. 드래곤피크 산장 관리인 함승국(55)씨는 "스키장을 찾은 가족들 중엔 자녀에게 스키를 타게 한 뒤 부부가 함께 산행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상 부근 장구목에서, 이른바 '심마니길'을 타고 용산리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하지만 겨울엔 눈에 덮여 길찾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심마니길을 포기하고, 골드 코스 쪽 4.8㎞ 길이의 하산길을 택했다.

자녀들은 스키 즐기고
부부는 함께 산행
한일목장 능선 전망 빼어나
눈꽃축제·송어축제도 놓치지 말길


눈 경치는 하산길 초반이 근사하다. 눈더미를 인 주목들과 참나무들이 그림 같은 눈터널을 이뤄 산행객을 받아준다. 눈터널 뒤엔 신갈나무와 자작나무 무리 사이로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작은 발자국들, 바람에 쓸려 두껍게 쌓인 눈더미 위로 고개를 내민 붉디붉은 열매들, 그리고 쓰러져 누운 거대한 나무둥치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길은 내려갈수록 고요해져, 박달나무·자작나무 벗겨진 나무 껍질이 바람에 떠는 소리도 들려올 듯하다. 세 번 만나게 되는 스키꾼·보드꾼 바람 가르며 내달리는 슬로프를 건널 때는 문득 질주 욕망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발에 단단히 옭아맨 아이젠이 가파른 등산로 쪽으로 이끌어 간다. 산길이 다소 완만해지며, 무성했던 참나무들은 어느새 소나무와 전나무 무리로 바뀐다. 철쭉오름쉼터에서 약수터 내려가는 길 왼쪽에서 서로 얼싸안듯이 자라오른, 아름드리 소나무와 박달나무 한쌍이 보인다. 뿌리가 한데 얽혀, 눈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연인처럼 정답다. 약수터에선 돌담 사이 대나무통에서 흘러나오는 달고 개운한 물맛을 볼 수 있다. 약수터에서 한결 완만해지고 넓어진 길을 30분쯤 걸어 내려오면 소나무 우거진 숲길 지나 골드코스 등산로 입구에 이른다. 버치힐리조트 쪽이다. 여기서 버치힐리조트와 용평리조트 타워콘도 사이를 20분마다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대관령목장 능선 따라 바람개비길

대관령면 횡계리의 고원지대로 오르면, 거센 바람 속에 펼쳐지는 또다른 장쾌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해발 1000m를 넘는 고원에 들어선 한일목장과 삼양목장의 광활한 초지와 주변 산줄기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자아내는 풍경이다. 가장 빼어난 전망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한일목장 능선이다. 대관령삼양목장 쪽으로 오르다, 삼양목장 입구 못미처 왼쪽에 차량 차단기가 설치된 임도가 나온다. 여기서 한시간쯤 눈길을 걸어오르면 거대한 풍력발전기들 사이로 드러나는 드넓은 고원지대를 만난다. 동쪽으로 삼양목장 초지와 선자령·곤신봉 능선이, 서쪽으론 황병산·오대산 쪽 산줄기들이 거침없이 펼쳐지는 장소다. 멀리 가까이 늘어선, 세 개의 날개를 단 풍력발전기 흰 기둥들이 첩첩이 쌓인 산줄기들의 거리감을 드러내준다.

임도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이채로운 풍력발전기 하나가 눈에 띈다. 여섯 개의 날개를 단 풍력발전기. 일직선상에 세워진 뒤쪽 발전기 기둥이 앞쪽 발전기와 겹쳐진 채, 돌아가는 날개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물과 인공 구조물의 차이일까. 발왕산 정상 주목 무리에 부는 바람에 비해, 이곳 풍력발전기들이 자아내는 바람 소리는 무심하고 냉정하다. 대관령면 일대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51기다. 강릉 인구의 20%쯤 되는 4만5000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남한강 상류 송천·오대천 얼음길

대관령 고원지대에서 발원해 내려가는 물길이 송천이다. 소떼도 키우고 황태도 무르익히는 송천 물길은 횡계리 마을을 휘감은 뒤 발왕산 옆을 굽이쳐 도암호(수하호)로 흘러든다. 이 물길이 정선 쪽으로 내려가 오대천과 합쳐진 뒤 조양강~동강~남한강을 이룬다. 지금 송천과 오대천 두 물길에선 각각 색다른 겨울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대관령눈꽃축제(횡계리 송천 일대, 1월12일까지)와 평창송어축제(진부리 오대천 둔치, 2월2일까지)다. 눈꽃축제장에선 이글루 체험, 황태덕장 체험, 스노래프팅, 봅슬레이 체험 등을 할 수 있고, 송어축제장에선 얼음낚시를 통해 큼직한 송어를 낚을 수 있다. 송어축제장에서도 송어맨손잡이와 전통썰매·아이스자전거·미니봅슬레이·스노바이킹 등 다양한 겨울놀이와 레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



>>> 평창 여행정보

가는 길

발왕산과 용평스키장은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횡계나들목에서 나가 횡계리 거쳐 용평스키장으로 간다. 한일목장은 횡계리에서 대관령삼양목장 팻말 보고 송천을 따라 오르다 한일산업주식회사 입구 지나 조금 오르면 왼쪽에 들머리가 나온다. 평창송어축제장은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나가 진부리 오대천 둔치로 가면 된다.

먹을 곳

횡계리에 황태회관·황태덕장·납작식당 등 황태해장국·황태찜·황태구이와 오삼불고기(오징어·삼겹살 불고기)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진부리에선 산채전문식당인 부일식당, 큼직한 돼지갈비가 들어가는 왕갈비탕(사진)을 내는 명진왕갈비탕 등에서 먹을 만하다.

묵을 곳

횡계리에 용평리조트, 알펜시아리조트가 있고, 송어축제가 열리는 진부리엔 오투모텔 등이 있다.

여행 문의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399, 용평리조트 (033)335-5757, 대관령삼양목장 (033)335-5044, 대관령양떼목장 (033)335-1966, 오대산 월정사 (033)339-6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