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육갑문-행주대교를 경유해
만개한 매화가 아니라 한가지에 핀 꽃을 찾아서 미타사를 찾았다.
지친 몸으로 "한가지에 핀 매화"를 찾는 사유는
몇 년 전 감동적으로 읽은 석재_서병오(石齋 徐丙五)씨의 시 설중매(雪中梅)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삼성, NX10, 50-200mm망원줌, 2015.03.21 16:53)
雪中梅(설중매)
여러번 답사끝에 "한가지에 핀 매화"촬영에 성공했으나,
雪中梅(설중매)란 시제에 잘 어울리는 사진을 찾아 올린다.
雪中梅(설중매) _ 석재 서병오 지난 밤에 눈이 왔는데 매화나무 한가지에 꽃이 폈더라 이 사진은 출사코리아- 통도사의 雪中梅(설중매) 중에서 가저옴 http://chulsa.kr/5468832 |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 1862∼1935) ? 석재(石齋)는 조선말기 영남이 낳은 기재이자 걸출한 서화가였다. 시대의 풍운아 대원군이 대구에 신동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불러 만나니 그 때 석재의 나이 17세였다. 운현궁에서 함께 시를 짓고 서화와 바둑으로 소일하다 마침내 대원군은 그의 호 석파(石坡)에서 한 자를 따서 석재라는 아호를 하사할 만큼 그의 재주를 알아주었다. 자고로 천재라야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였던가, 석재는 과연 天質이 빼어나서인지 여덟 가지 재주에 능통하다하여 그의 별명은 팔능거사(八能居士)로도 통했을 정도이다. 글씨는 석파를 통한 추사체 영향을 받았으며, 그림은 <개자원화보(介子園畵譜)>와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서화교육 뿐만 아니라 한시를 현상모집 심사하여 1등에서 10등으로 구분하여 상금을 주기도 하였다. 당시 대구에서 시회가 열리면 전국으로부터 김규진, 김돈희, 고희동, 오세창, 황용하, 김유택, 허백련, 지차한 등 당대 최고의 시인 묵객이 다 모일만큼 석재는 석화계의 영수로서 영남뿐만 아니라 조선8도 문화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대원군의 권유로 58세 때 북경과 상해 등지에서 교류한 제백석, 왕석, 포작영 등 거장들 외에도 손문 같은 정치인도 교류하였으며, 그들로부터 화국지재(華國之才)란 칭송을 받았다. (출처-범고래님의 불로그 "20세기 대한민국 10대 서예가 10인" 중 부분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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