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30 김광일 논설위원)
영국 탐사 보도 기자 앤드루 제닝스가 2006년 책 '파울! FIFA의 암흑세계'를 냈다.
'뇌물, 부정선거, 티켓 스캔들'이라는 부제(副題)를 달았다.
책이 나오자 온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풍문으로 떠돌던 얘기가 구체적인 이름과 뇌물 액수로 적혀 있었다.
워낙 엄청난 규모로 사건과 인물이 꼬였고 돈다발이 컸다.
그해 BBC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도 100만파운드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스위스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FIFA의 비리는 대략 네 군데서 벌어졌다.
스폰서, TV 중계, 월드컵 개최지 그리고 회장 선거였다.
뭉텅이 돈이 집행위원과 지역 연맹 간부 호주머니로 흘러다녔다.
추문이 터질 때마다 마케팅 대행사인 국제스포츠·레저(ISL)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ISL은 스포츠 용품회사 아디다스의 다슬러 회장이 1983년에 세웠다.
다슬러는 코카콜라도 스폰서로 끌어들였다. 이어 굴지의 TV 방송사들이 합류했다.
그렇게 FIFA를 둘러싸고 아디다스·코카콜라·TV의 '3각 편대'가 구축됐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을 지낸 트리즈먼 경(卿)은 "그들은 마치 마피아 같았다"고 했다.
ISL이 10년 동안 저지른 뇌물 사건이 175건에 1억달러를 넘었다.
마케팅 대행사는 FIFA에 뇌물을 뿌리면서 다른 쪽으로 TV 중계료를 삼켰다.
2002 한·일과 2006 독일, 두 월드컵 중계료 7000만유로를 가로챈 혐의로 ISL 간부 5명이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블라터 회장은 고발 뉴스가 터질 때마다 공식 수사 결과가 아니라며 자체 조사를 비켜갔다.
▶미국 법무장관이 엊그제 FIFA와 마케팅 회사 간부 14명을 부패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사기, 돈세탁, 탈세, 뇌물 수수 같은 죄목이 47개나 붙었다.
오고 간 검은돈이 1억5000만달러쯤 됐다.
미 법무부는 수십년 곪아 터진 FIFA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벼른다.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도 들먹여지고 있다.
2010 남아공,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월드컵 유치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지금은 ISL은 없고 인프런트 스포츠·미디어가 월드컵 중계 에이전시다.
그런데 거기 CEO 필리프 블라터는 FIFA 회장 조카다.
월드컵 때면 '조카'가 '삼촌'에게 TV 중계료를 5억달러쯤 낸다.
FIFA 지도부는 선거나 월드컵 대목이면 심복에게 '돈 샤워'를 시켜준다고 한다.
오죽하면 축구를 위해 먼저 FIFA부터 없애자는 말까지 나올까.
선수들이 공을 패스할 때 FIFA는 돈다발을 패스한다.
[횡설수설/한기흥]둥근 공의 제국 FIFA의 악취
동아일보 2015-5-3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이번 수사에 대해 “자국의 사법권을 다른 나라로 확대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라고 발끈했다. 수사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2010년 FIFA가 러시아와 함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를 한 번에 결정한 것을 놓고 뒷거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폭염이 심한 데다 축구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카타르가 미국을 표 대결로 누르고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것도 불가사의였는데 이제야 그 내막을 알게 될 모양이다.
▷축구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신자가 많은 ‘종교’라고 한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때는 연인원 300억 명이 TV로 지켜봤다. FIFA는 TV중계권과 마케팅권 판매로 57억 달러(약 6조3000억 원)를 벌었고 현금도 15억 달러(약 1조6500억 원) 이상 쌓아두고 있다. 지난 24년 동안 월드컵 중계권과 관련해 드러난 뇌물과 리베이트만 1억5000만 달러(약 1657억 원)다.
▷공 하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다. 세계적 축구 선수들 가운데도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빈국 출신이 적지 않다. 공은 둥글다. 축구만 잘하면 언젠가 호날두나 메시처럼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우며 힘껏 공을 차는 어린이들이 많다. 축구가 주는 설렘과 기쁨, 행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 이면에 숨어 있던 FIFA 패밀리의 탐욕이 드디어 추악한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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