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6.15
데뷔 30년, 최근 12집 앨범을 냈다 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이 ‘시간 참 빠르다’라고 했다.
가수 이승철의 인터뷰 계획을 전하며 취재기자가 알려준 내용이다.
처음 약속한 인터뷰 장소는 그의 녹음실이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스튜디오로 온다고 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여기로 오는게 낫겠다며,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빨리 오겠다고 했다.
미리 와서 촬영 준비를 하겠다는 통보였다. 의외였다.
이런 일, 요즘 드물다.
더구나 그는 ‘라이브의 황제’로 불리는 30년차 베테랑 가수가 아니던가?
나 또한 그가 미리 오겠다는 시간보다 일찍 스튜디오로 와야 했다. 인터뷰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튜디오로 들어와 먼저 분장실을 살펴봤다. 너저분한 분장실을 대충 정리라도 할 요량이었다. 처음 보는 가방이 분장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체불명의 가방이었다. 다른 팀들이 촬영 후에 두고 갔으려니 하고 옆으로 치워 놓았다.
잠시후, 이승철의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스태프 둘이 스튜디오로 왔다.
정체불명 가방의 주인이었다. 처음 오는 곳이기에 실수하지 않으려 한 시간 가량 일찍 왔다고 했다. 이승철의 스타일링만 15년 했다는 스타일리스트의 얘기다. 촬영 예정 시간보다 무려 두 시간 일찍 온 게다. 참 남다르다 싶었다.
통보대로 한 시간 미리 그가 왔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장소가 낯익다며 둘러본다.
“데뷔 초, 잡지 촬영차 왔던 곳 같은데 당시에도 스튜디오가 여기 있었어요?”라며 묻는다. 약간 상기된 목소리다.
“예전엔 잡지 촬영용 스튜디오였어요, 아마 맞을 겁니다.”
“이야! 기억이 나네요. 거의 30년 지났네요.”
30년이 지나 그 장소에 다시 온다는 건 누구에게나 예사롭지 않은 감흥일 터.
“여기서는 아니지만 예전에 이승철씨 사진을 한 번 찍은 적 있습니다. 외국인 댄서들과 함께 활동할 때입니다.”
“그런가요? 그때가 5집 앨범 ‘오늘도 난’으로 활동할 때니까 1996년쯤일 겁니다. 거의 20년 됐네요.”
20년이란 말에 놀랐다. 그의 사진을 찍은 건 기억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의 노래처럼 시간 참 빨랐다.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한 후,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준비한 학생용 의자에 앉으라 했다.
학생들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비치해둔 소품이었다.
“모처럼 학생용 의자에 앉으니 옛날 생각나시죠?”
촬영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한 말이다.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어서……”라며 호탕한 웃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오늘 촬영 콘셉트가 뭐냐고 되물었다.
사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의 질문에 놀랐다.
보통은 내가 먼저 사진의 콘셉트를 일러주며 그에 합당한 메시지를 보여줄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한다.
그런데 그가 거꾸로 내게 물었다.
멋있게 찍어달라거나 아름답게 찍어달라는 일반적인 요구가 아니라 콘셉트를 물었다.
이런 질문을 먼저 받은 게 거의 처음이었다.
돌이켜보면 20여 년 전에도 그는 그랬다. 댄서들의 의상과 콘셉트에 맞는 포즈를 챙기며 뭣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오늘 사진의 콘셉트는 ‘세월’이라고 했다. 그냥 세월을 느끼라 했다.
데뷔 30년, 30년 전의 그 장소, 20년 만의 만남.
이 모든 일,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시간 참 빠르다’이지 않은가.
3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이승철로 서 있는 그를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촬영 후 인터뷰, 취재기자가 롱런의 비결을 물었다.
“나는 돈 벌기 위해 노래 아닌 다른 부업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승철은 노래 빼면 뭘 해도 안 어울립니다”고 답했다.
그렇다. 30년이란 시간 동안 가수로서 그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노래였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장소와 시간, 콘셉트까지 미리 준비하는 것. 그가 제일 잘하는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그리하는 게다.
10년, 아니면 20년 후, 노래하는 그와 사진 찍는 내가 또 만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적어도 그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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