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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13)-② 타슈켄트大 학생이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오지 못하는 이유

바람아님 2016. 1. 8. 18:38

(출처-조선일보 2015.08.17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①편에서 계속>
유라시아 국가에서는 대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여행할 때 중간 휴게실에서 차 한 잔과 만두를 먹고 화장실을 
찾으면 벌판 후미진 곳에서 구멍 여러 개가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용변을 해결하는데 남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특히 한국 여성들은 몹시 괴롭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투르크 족 자치 공화국인 야쿠트나 알타이 지방을 가보면 ‘3인용’ 혹은 ‘4인용’ 재래식 
오두막 변소가 있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변소 한 칸에 서너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아 동시에 서너 명이 사이좋게 
용변을 볼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일을 보고 나온 사람은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자리가 있어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극장 빈자리를 채워 들어가듯 
사람들은 화장실 빈자리를 찾아 일을 본다. 그 광경에 당황하고 도저히 적응을 못해 뒷사람한테 “절대 자리 남았다고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양해를 구한 후 4인용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면 그곳 아주머니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뭐 그리 유난을 떠느냐며 궁시렁거리기 일쑤다.

타슈켄트 대학 캠퍼스조차도 화장실을 찾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건물 한 동 어디엔 가에 교직원만 이용할 수 있는 조그만 화장실이 팻말도 없이 자물쇠로 잠겨 있고, 학생용은 캠퍼스 한 
귀퉁이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가 긴 줄을 기다려야만 해결할 수 있다. 일례로 어느 날 모 대학교 문과대학교에서 세미나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묻자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화장실이 없을 수 있냐고 내심 당황하고 
놀라서 묻자,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최소한 한 층마다 화장실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였다. 
건물 한 동에 최소한 하나정도는 있어야 할 화장실이 거의 15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만 여 명 정도 되는 
전교생 모두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캠퍼스 한 구석에 조그맣게 마련해 놓은 것이다.
유료화장실. /조선닷컴
유료화장실. /조선닷컴
한국어문학과에서 강의를 할 때의 일이다. 수업시간이 되면 꼭 한 두 명씩 손을 들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생리적인 일이니 당연히 허락을 안 할 수 없는 일인데, 매 시간마다 그런 학생이 생기니 신경이 쓰여서 왜 쉬는 
시간에 다녀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멀고 줄이 길어서 쉬는 시간 동안에 다녀오면 수업에 들어올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어문학과만은 세련된 ‘수세식’ 화장실이 학과 강의실 층에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교수들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했다. 그제야 화장실에 인색한 중앙아시아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학교가 아닌 관공서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그나마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것은 다행인데 변기뚜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권 국가들이 거의 동일하다. 사회주의 시절 대중의 편의는 항상 뒷전에 있었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화장실 문제는 국민 건강과도 직결될 수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번은 타슈켄트 소재 종합대학교에서 9시부터 5시까지 연달아 강의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여행하려면 건조한 기후임에도 물도 
마음껏 마실 수가 없다.

투르크 족 국가들 중에서 화장실 문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해결한 나라는 터키이다. 터키는 과거에는 유럽인들에게 화장실 
때문에 많은 조롱과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터키여행을 다녀와서는 화장실을 빗대며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나라”라며 비웃었다. 과거 오스만제국과 이슬람 포비아는 ‘알라투르카’라고 불리는 재래식 화장실로 빈정거림을 샀다. 
그러나 터키의 이런 열악한 화장실 상황은 역으로 수많은 벼락부자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를 전후로 재래식 화장실은 거의 일제히 현대식 화장실로 개조되며 도처에 유료공중화장실이 생겨났다. 
소위 “화장실 재벌”들로 불리는 화장실 주인들은 곳곳에 ‘알라프랑가’라는 청결한 유럽식 화장실을 만들어 재미를 보았다. 
이들은 공중화장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휴지를 주고 일을 보고 나오면 화장수를 친절히 뿌려준다. 대신 화장실은 언제나 
청결하게 관리하고 있다. 
화장실 하나로만 잣대를 삼았을 때 유라시아 대륙에서 선진국 수준을 자랑하는 곳은 역시 터키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선진국과 비선진국의 차이는 전적으로 화장실의 수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