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매 맞는 남편 얘기가 심심찮게 뉴스에 흘러나온다. 가정폭력 상담기관인 ‘한국 남성의 전화’에 따르면 아내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한 사례는 지난해 1394건으로 2년 전보다 71% 늘었다고 한다. 퇴직한 50∼60대 남성들이 주된 타깃이다. 남편을 가정에서 왕따시키거나 목을 조르는 아내도 있다. 가정 폭력의 가해자가 남편에서 아내로 점차 바뀌는 양상이다.
폭력의 원인을 놓고는 견해가 분분하다. 남편이 조기 퇴직으로 경제적인 지위를 잃은 것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 아닐까. 남편이 평소 아내와 가정에 애정을 쏟지 못한 잘못이 크다. 잘 나가던 시절에 소홀히 하다 뒤늦게 힘이 빠지고 나서야 신경을 쓰니 핸드백이 공중부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숙제처럼 몰아서 하는 게 아니다. 애정이 고갈된 심지에는 불이 붙지 않는 법이다. 대유학자 퇴계 이황의 ‘부덕(夫德)’을 떠올려본다. 첫 부인과 사별한 퇴계가 재혼한 아내는 지적장애인이었다. 그는 결혼 후에 아내가 자주 실수를 하자 사랑으로 포용했다. 어느 날 제사를 차리는 도중에 상위에서 배가 떨어지자 아내가 그것을 치마 속에 감추었다. 그것을 보고 형수가 나무라자 퇴계는 대신 사과한 뒤 아내에게 배를 깎아 주었다. 아내가 흰 두루마기를 붉은 천으로 꿰매자 “붉은색은 잡귀를 쫓는 것”이라며 그대로 입고 외출했다. 아내가 세상을 뜬 후에는 묘소 곁에 1년 넘게 움막을 짓고 살았다. 퇴계가 떠난 지 400년이 지났지만 부부 사랑의 향기가 가시지 않는다.
부부 갈등을 푸는 데에는 사랑만 한 게 없다. 사랑의 결핍으로 생긴 병증은 오직 사랑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 영장류인 침팬지는 부부 싸움을 한 뒤 키스로 화해한다고 한다. 영장류 중에서 가장 영민하다는 인간이 침팬지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야 없지 않은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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