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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펭귄과 줄기러기

바람아님 2016. 1. 26. 00:27
문화일보 2016-1-25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남극 지방의 터줏대감 황제펭귄의 생존 비법이 궁금했다, 영하 18도에 엄살 피우는 이때.

황제펭귄은 형제자매가 없다. 엄마가 알을 하나만 낳는 까닭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금이야 옥이야 육아에 애정을 쏟는다. 우선, 포란과 부화는 오롯이 아빠가 맡는다. 아빠 펭귄은 알을 발등에 올려놓고 폭신한 깃털로 감싸준다. 꽁꽁 언 눈 바닥에 알이 떨어져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벌을 받듯이 두 발로 서서 장장 넉 달을 견딘다. 그 기간엔 영하 60도로 떨어지는 날이 한 달이나 된다. 아기 펭귄이 깨어나오면 아빠는 그동안 내장하고 있던 먹이를 뱉어 아기에게 먹인다. 펭귄판 비둘기젖(pigeon milk)이다. 먹이 사냥 나갔던 아내가 돌아오면 그제야 아빠는 임무를 교대한다. ‘대자연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웅적’인 부정(父情)이라 할 만하다.


티베트 고원에서 인도 저지대를 오가는 줄기러기들의 삶도 황제펭귄 못지않다. 이들은 혹한에 맞서는 대신, 해발 9000m에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몇 가지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시간에 80㎞를 날 수 있는 체력은 기본이다.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는 깃털과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솜털 및 순환기관, 그리고 단숨에 산소를 최대한 들이켜고 재흡입하며 신속히 분산 저장할 수 있는 호흡기관도 있다. 아기 줄기러기들의 체격은 타고난다. 부화할 때 이미 솜털이 나 있을 뿐 아니라, 앞을 볼 수도 있고, 걷는 것은 물론 잠시나마 헤엄도 칠 수 있다.


나머지 조건은 가족애다. 엄마가 알을 품을 때면 아빠는 보초를 선다. 사주경계를 하며 천적으로부터 가정을 사수한다. 줄기러기의 부모-자식 간 가족애는 남다른 데가 있다. 아이들의 몸집이 절반이나 컸을 즈음 부모들의 털갈이가 시작된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이 시기 어른들은 날지를 못한다. 이때 자식들은 ‘부모 보호’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3∼7남매가 모여 외적으로부터 부모를 지키는 것이다. 또 하나, 줄기러기들에게 필요한 게 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 훌륭한 리더의 경륜이 뒷받침되면 인도∼티베트 구간 1600㎞를 시속 90∼400㎞의 Z기류에 편승, 하루 만에 이동한다. 혹한도 가족의 사랑으로 녹인다.


최근의 아동 학대·살해 사건이 차라리 오보(誤報)였으면 싶다.


황성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