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21 김태훈 여론독자부장)
대한민국엔 자기 나라를 깎아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다 하는 자학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런 말도 한다.
"해방 후 한국과 달리 2차대전 후 프랑스는 독일 부역자를 단호히 처단했다." 사실이 아니고 사실일 수도 없다.
처단이란 미명 아래 법 밖에서 자행된 사적인 복수극으로 자기들끼리 수천 명을 죽였다.
무엇보다 프랑스가 그토록 철두철미한 나라였다면 개전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무릎 꿇은 그 나약함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저명한 사상가 이안 부루마는 저서 '0년'에서 전쟁 전후(前後)의 프랑스를 '도덕적 파산 상태'라고 했다.
파리는 1940년 6월 14일 함락됐다. 그날, 파리 시내를 활보하는 독일군 중엔 카메라를 든 이도 있었다.
그들은 저항을 포기한 파리에 관광객처럼 입성했다.
전쟁은 무기만 갖고 하는 게 아니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 군사 대국이었다.
전차 2400대를 보유한 독일에 맞서 연합군 전차 3000대로 영토를 지켰다. 그러고도 졌다.
이유는 분명했다.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다 요새와 포대·벙커를 촘촘히 연결한 마지노선(線)을 쌓고는 그 뒤에서
정신적으로 무장해제됐다.
독일의 군비 증강을 보고도, 그리고 언젠가 파국이 닥칠 것을 알고도 "전쟁만은 안 된다"고 외쳤다.
참모총장 모리스 가믈랭은 "전쟁은 청년을 너무 많이 희생시킨다"는 말로 싸우기 싫어하는 국민의 환심이나 샀고,
폴 레노 총리는 반전주의자인 정부(情婦)의 치마폭에서 놀아났다.
대독(對獨) 항전을 독려하던 처칠 영국 총리가 "저 여자는 내가 낮 동안 해 놓은 모든 일을 밤에 무위로 돌려놓는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정치인과 군인만 썩는다고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다. 국민이 함께 썩을 때 진짜 무너진다.
처칠 회고록 '제2차세계대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영·프 정부가 마르세유 인근 비행장에 배치된 영국 공군기로 배후의 적인 이탈리아를 폭격하려 하자 비행장 인근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적의 보복으로 비행장 주변 마을이 폭격당하면 책임질 거냐"며 폭격기가 이륙하지 못하게 트랙터와 수레,
짐차로 활주로를 막아버렸다. 파리 함락 사흘 전의 일이다.
동맹국끼리는 같은 편이 위험에 빠지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6·25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함께 참전한 외아들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번 주 방한했던 펜스 미 부통령도 부친이 6·25 참전 용사로 인민군에게 맞서 싸웠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동맹은 깨진다.
그렇게 쌓은 한·미 동맹의 마지노선 뒤에서 우리는 지난겨울 탄핵의 촛불을 들었고 봄에는 꽃구경을 다녔다.
사드가 들어설 성주 골프장 가는 도로를 막는 바람에 치누크 헬기가 불도저와 굴착기를 공수해야 했다.
그러면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외쳤다. 잘못된 외침이다. "북핵 가고 평화 오라" 해야 맞는다.
북핵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날, 동맹을 방패 삼아 우리가 누려온 자유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으로 무너진 게 아니다.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졌기에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대한민국이 그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대선 후보들도 "전쟁만은 안 된다"는 나약한 말로 국민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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