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400조원 규모의 클린 에너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미국 여론은 갈기 갈기 쪼개지고 석유·석탄 기업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6월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 선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12개 주 정부는 ‘미국 기후 동맹’을 결성, 독자 노선을 선언했고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기후변화 협약 탈퇴 결정의 진정한 패자는 석탄과 석유 기업이며 태양광 기업들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규제의 역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개장하는 등 클린 에너지 산업에 397조원(361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 중국, 세계 최대 수상 태양광 발전소 완공··· 석탄 발전소 100개 건설 계획 폐기
중국의 태양광 기업 썬글로우(Sungrow)는 “중국 동부 안후이 지역의 폐광산으로 오염된 호수 위에 세계 최대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지었다”고 9일 밝혔다.
타임은 “일본, 타이완, 베트남, 싱가포르 대표들이 기술 수출을 추진하는 썬글로우의 태양광 발전소 현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40메가와트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는 오는 5월부터 인근 도시에 전기를 공급할 예정이다.
IT전문지 ‘매셔블’은 “클린 에너지의 리더가 되려는 중국의 야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대형 프로젝트”라며 “미국이 차버린 리더의 자리를 중국에 차지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환경 장관 회의에서 클린 에너지 국가로 거듭나려는 중국의 야심찬 계획을 역설했다.
중국 정부는 올 해 1월 100개의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폐기했다. 2020년까지 3610억달러(2조5000억 위안)를 들여 화석 연료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계 환경 장관 회의에 참석했던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한 중국의 리더십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근 시진핑 주석을 면담한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은 혁신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며 ‘중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의 클린 에너지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은 사실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 선언으로 인한 국제적 혼란과 충격의 최대 수혜자다. 세계 석탄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은 여전히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 국가다.
한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로부터 환경 오염 국가란 비난을 받고 있는데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로 국제적인 비난과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게 됐다.
◆ 쪼개지는 미국… 12개 주, ‘미국 기후 동맹’ 결성
미국 여론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국민 59%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ABC, 워싱턴포스트)가 나와 안 그래도 ‘러시안 스캔들’과 제임스 코미 FBI(연방수사국) 국장 해임으로 죽을 쑤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율을 식히고 있다.
연방 정부 결정에 반발하는 지방 정부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조직화되고 있다.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등 미국의 9개 주정부는 8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주가 추진하는 ‘미국 기후 동맹’에 합류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 기후 동맹’ 참가하는 미국 인구는 1억2000만명으로 늘었다. 미국 전체 인구,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기후 동맹에 참여한 주 정부들은 자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26~28%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 스티글리츠는 “불량국가(rogue state) 미국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탄식하고 유명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도 “미국의 미래가 없다”고 비난했다.
직업 외교관인 데이비드 랭크 주중국 미국 대사대리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 결정에 항의, 사표를 던지는 등 관료와 지식인들의 반대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일부 대학과 예술 단체들은 “공화당의 돈 줄인 코크 형제들의 기부를 받지 말자”는 기부 거부 운동까지 벌일 태세다.
전기차 테슬라와 스페이스X 프로젝트 등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그렇게 설득했는데…”라며 트럼프 경제 자문회의 위원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아이들의 미래를 해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일간지 전문 광고를 통해 기후변화 협약 준수를 촉구한 글로벌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기후변화 협약 탈퇴의 최대 피해자는 석유와 가스 기업들… 진정한 승자는 태양광”
그러면 세계적인 혼란을 불러온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의 이해 득실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투자 전문업체 모틀리 풀은 최근 “일부 유전 개발 서비스 회사들이 단기적인 수혜를 입는 것을 제외하고는 석유와 가스 기업들이 미국의 기후변화 협약 탈퇴의 가장 큰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화석 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려 당장은 이익을 볼 것 같지만 규제 완화로 인해 대대적인 생산 증대가 이뤄지면 감산 중인 중동 산유국들이 증산에 돌입, 원유와 가스 가격이 대폭락하는 악순환에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엑손모빌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들도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에 반대했다.
반면 북미의 최대 태양광 패널 기업인 퍼스트 솔라가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모틀리 풀은 전망했다.
당장은 중국의 저가 패널 과잉 공급으로 태양광 시장이 부진하지만 온실 가스의 폐해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 재생 에너지 수요가 늘고 이 경우 탄탄한 경쟁력을 가진 퍼스트 솔라 같은 기업들에게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규제’는 흔히 역효과를 낸다. 1970년대 미국은 메이저 비행기 회사들의 가격 담합을 막기 위해 규제를 만들었다가 밀려드는 덤핑 방지 소송에 대부분의 정력을 쏟았다.
규제하라고 만든 기관이 규제 받는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규제 포착’이란 역설 현상도 고질적으로 등장한다.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가 당초 보호하려던 석유, 가스, 석탄 기업에게 재앙이 될지 될 지, 태양광 등 클린 에너지 기업에게 도약의 찬스가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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