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06. 03:06
지난 2일 저녁 서울 용산구에 사는 회사원 김아영(34)씨는 이촌 한강공원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저만치에 커다란 괴수(怪獸)가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살아있는 짐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울시에서 설치한 조각이었다"며 "왜 세금으로 이런 흉물을 설치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에도 이 조형물을 보고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는 시민들의 후기가 잇따라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서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고 썼다.
서울시가 세금 102억원을 들여 조성한 이촌·여의도 '한강예술공원'의 일부 조형물이 '흉물' 논란에 휩싸였다. 한강예술공원은 시에서 '시민들이 일상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난 25일 개장했다. 한강공원 곳곳에 조형물 37점을 설치했다. 국내 30팀, 해외 7팀 등 37팀이 만들었다. 사업비 102억원 중 조형물 설치에 60억원이 들어갔다. 작품당 평균 2억원 가까이 들었다.
논란이 된 괴수 조형물은 조각가 지용호씨가 만든 '북극곰'이다. 이촌 한강공원 위를 지나는 철교 아래에 있다. 검은색 폐타이어를 이용해 북극곰의 피부, 근육, 이빨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시 관계자는 "곰은 한강의 강한 생명력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두운 저녁 무렵 조형물을 본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대학생 박형서(23)씨는 "작품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조형물을 세금 들여 설치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부 시민은 '북극곰'을 두고 "혐오스럽다"며 시에 민원까지 제기했다.
'북극곰'뿐 아니라 37점 중 상당수 조형물에 대해 "지나치게 난해하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런 작품들에 세금 수십억원이 들어갔다니 문제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한강 나무들 사이에 세워진 '한강나무-P6'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나무 형상에 흰 페인트를 칠해 멀리서도 두드러져 보인다. 멀리서 보면 나무, 가까이서 보면 네모난 조각 파편으로 보인다. '착시를 통해 인간이 지닌 단편적 시각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게 작품 의도다. 시민 김용태(64)씨는 "멀쩡한 나무들 사이에 생뚱맞게 허연 나무가 있어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아지 사진 3장을 붙여놓은 반사경도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공존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를 본 고등학생 정민지(17)양은 "뜬금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버려진 선박에 흙을 채워넣고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은 '작품'도 있다. 시민 이주아(27)씨는 "일부 작품은 재미있지만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은 작품도 있어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 같다"고 했다.
시가 설치한 공공미술품이 '흉물' 논란을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는 지난 2014년 12월 여의도 한강공원에 1억8000만원을 들여 대형 '괴물' 조형물을 설치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어 지난해 5월 서울로에 폐신발 3만여 켤레를 100m 이어 붙인 '슈즈 트리'를 설치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불렀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시의 '흉물' 논란이 공공미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공원은 사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세금으로 만든 공공장소인 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무게를 둬야 한다"며 "설치를 완료하기 전에 예정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작품 '북극곰'의 경우, 혐오스럽다는 민원이 들어온 게 사실"이라며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오면 공원 내 다른 장소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전문가 36명으로 구성된 작품선정위원회에서 선정했고, 시민 공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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