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달에 29%까지 떨어졌다. 이유가 있다. 일부러 매를 벌 듯 인기 없는 정책만 고르고 또 고르는 것 같다. 먼저 그는 5년간 공무원 12만명 줄이는 작업을 거침없이 진행 중이다. 428만여 공무원들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마크롱은 속도 조절 의사가 없다. 마크롱은 철도 노조원을 개혁 대상으로 지목해 종신 고용을 폐지하고 복리후생을 줄였다. 15만명의 SNCF(국영철도공사) 직원 및 가족 수십만 명이 등을 돌렸다.
그뿐 아니다. 마크롱은 '나랏빚을 억제하겠다'며 2019년과 2020년 모두 연금 지급액을 0.3%씩만 인상하겠다고 결정했다. 물가 상승률보다 적게 올려주니 실질적으로 연금을 깎는 셈이다. 프랑스는 재정난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서 은퇴자들을 적절히 달래줘도 별 무리는 없다. 그래도 마크롱은 거센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마른 수건을 쥐어짜기로 했다. 60세 이상 인구가 유권자의 30%인 1200만명이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결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방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마크롱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주저앉은 지지율 이야기가 나오자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를 위한 개혁이 고통스러워 인기가 떨어지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당장 눈앞의 혜택이 줄어드는 사람들의 아우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건한 체질의 나라를 후대에 넘겨주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정반대 스토리는 바로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인기 만점의 달콤한 정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저소득층에게 매월 100만원씩 기본 소득을 주기로 했다. 나라 곳간이 마르자 전임 정부는 65세부터 주던 연금을 67세부터 지급하며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지금 정부는 다시 65세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생활고에 지친 이탈리아인들은 쌍수(雙手)를 들고 환영한다. 국민이 눈앞에 던져진 사탕을 보고 환호하는 사이에, 이탈리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집권 세력이 인기를 탐해 다수가 좋아하는 정책을 펴는 건 이탈리아에서 보듯 어려운 일이 아니다. 퍼주는 걸 누가 못 하나. 불안한 대목은 문재인 정부가 가는 방향이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자리 늘린답시고 일부러 공무원을 증원하고, 최저임금을 2년 사이 27.3%나 올린 건 요즘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행보다.
한쪽에서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비명을 부르는 일이고, 미래에는 곡(哭)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멀리 내다보고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마크롱의 기개가 돋보이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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