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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책] 행복은 하루의 불꽃 축제보다 364일의 산책·대화에 있다

바람아님 2018. 10. 31. 21:51

(조선일보 2018.10.29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은 기쁨의 强度보다 빈도… 딱 한 번의 강렬한 경험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 느껴
미래 걱정으로 現在 놓쳐선 안 돼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작은 것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한다. 나에겐 축구가 그것이었다. 월드컵에서

후반 3분을 남기고 기적 같은 역전 골을 넣는다면 나는 평생 행복하리라는 망상도 가끔 품었다.

행복은 정말 짜릿한 골과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들의 모음일까?

대학 졸업 당시 행복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연구실이 미국에 있었다.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이후 나는 다소 특이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매일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받는 질문이, 공부를 통해 행복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행복에 대해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이런 자문을 할 때 1991년에 지도 교수가 출판한 논문 제목이 떠오른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것이다.

기쁨의 빈도란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동안 느끼는 이 경험의 횟수를 말하는 것이고, 강도란 그 경험을 얼마나 강렬하게

느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허상과는 달리 행복은 극적인 경험이 아닌 가랑비와 같은

잔잔한 즐거움의 횟수와 더 큰 연관이 있다.

이 결론은 행복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들의 정서적 경험을 분석, 비교해 보면 뚜렷이 나타난다.


인생의 극적인 경험이 행복에 장기적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극적인 경험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화려한 불꽃 축제만이 행복이면 나머지 364일은 그저 그 하루를 기다리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극적 사건은 이후 경험들의 재미를 증발시키는 대조 효과(contrast effect)를 발생시킨다.

가령, 미국 일리노이주의 복권 당첨자 22명의 행복을 살펴본 브릭먼(Brickman)과 동료들의 유명한 연구가 있다.

복권 당첨자들은 그런 큰 경험을 맛보지 못한 그들의 이웃에 비해 일상의 작은 일들(아침 먹기, TV 보기,

친구와 농담 나누기 등)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덜했다.

한 번의 강렬한 경험(복권 당첨)은 그 후의 작은 일상 경험들의 즐거움을 둔화시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극적인 골이나 복권 당첨이 아니라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친구와 수다를 나누는 소소한 경험들로

이루어진다. 최근 이런 작은 경험에서 얻는 행복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쓰고 있지만, 높은 행복을 보고하는 스칸디나비아의 덴마크에서는 휘게(hygge),

스웨덴에서는 라곰(lagom)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미 '작지만 확실한' 기쁨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소확행(小確幸)행복 추구 과정에서 사람들이 범하는 몇 가지 오류들을 줄여 줄 수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일상 경험에 초점을 둔다는 것은 앞서 말한 기쁨의 강도보다 빈도에 방점을 둔다는 뜻이다.

아무리 크고 좋은 일도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우리 정서 시스템은 승진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통해 느끼는 기쁨을 곧 소멸시킨다.

그래야 또 승진을 하고 싶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자주 음미하는 것이 이 정서 작동법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이다.


소확행(小確幸)의 또 다른 장점은 과대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으로부터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미래는 가능성일 뿐이지 확실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행복 기대는 대부분 부풀려진다는 것을 많은 연구가

보여준다. 의대 합격이 10의 행복을 주리라 예측하지만, 실제 값은 6이나 7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미래의

행복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확행(小確幸)은 행복 시각을 미래에서 현재로 옮겨 놓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작고 확실한' 행복에 묻혀 있는 가장 큰 의미는 행복의 주관적 경험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보여주기 위한 행복 소품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최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커피와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을 남이 알면 뭐하며 또 모르면 어떤가.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행복은 하루의 불꽃 축제보다 364일의 산책·대화에 있다   (2018.10.29)

출근길 감자 상자에서 찾은 행복   (2018.08.13 )

규율 적고 수평한 사회일수록 행복감 높다   (2018.06.18)


장기 기증 활발한 지역은 행복감도 높다   (2018.04.09)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2017.11.20)

긴 휴가, 준비되셨나요?(2017.09.25)

"소셜미디어 속 멋진 인생에 흔들리지 마라"(2017.07.24)

축구든 인생이든 즐겨라 (2017.06.05)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2017.04.24)

행복,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몫 (조선일보 2017.03.13)

설날 최고의 덕담, "더 많이 움직이세요"(조선일보 2017.01.25)

돈의 함정(조선일보 2016.12.12)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  (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배부른 돼지'에게도 잔치는 필요하다(조선일보 2016. 0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