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21 백영옥 소설가)
"제 얼굴에 붉은 반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매우 어릴 때 레이저로 제거했는데, 그때 그들은 마취하는 것을
잊어버렸고 그때부터 저는 말더듬이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유명 가수 에드 시런의 별명은 생강이었다. 머리카락 색깔이 붉었기 때문이다.
빨간 머리 남자아이는 말까지 더듬었다. 또래 친구들의 놀림이 계속될수록 말 더듬는 증세는 심해졌다.
에드 시런을 볼 때마다 나는 홍당무라고 놀림받았던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곤 했다.
생강과 홍당무 사이에는 수많은 말줄임표가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빨간 머리는 있다. 거울 속 빨간 머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살기 싫다고 느낀 순간이 소년에게도 있었다.
그때 다가온 건 음악이었다. 그는 말더듬증을 고치기 위해 에미넘의 랩을 따라 불렀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빠르고 정확한 가사를 들으며 어눌한 발음을 교정했다. 부르고 또 부르는 일은 4년 동안
길거리 공연에서 계속됐다. 누가 듣든 안 듣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유별나거나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당신보다 더 나은 당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에드 시런의 많은 히트곡에 붙은 댓글 중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그의 더벅머리가 사랑스럽고,
그의 빨간 머리가 너무 귀엽다는 말이다. 사실 그의 외모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러니 생강이 장미가 된 기적이 생긴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뿐이다.
이쯤에서 나는 아픈 과거도 끝내 바뀔 수 있다는 걸 있는 힘껏 믿어보고 싶다.
지난주, 미스터트롯 결선에서 어린 시절 사고로 얼굴에 남은 상처를 가리키며 "엄마, 내 얼굴엔 나이키가 있어!"라고
말하던 소년이 자라 우승자가 되었다. 승리의 여신을 뜻하는 나이키(니케)가 그려진 한 남자의 상처가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아픈 과거 역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0/20200320054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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