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4.29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1심은 유죄였다. "대부분의 작업을 조수가 완성하고 조영남씨는 덧칠만 했을 뿐이다.
조씨의 온전한 창작물이 아닌데도 이를 알리지 않고 그림을 팔았으니 사기에 해당한다."
2심은 무죄였다. "조수는 조씨의 화투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보조자에 불과하니
조씨의 작품이라고 봐야 한다." 가수 조씨의 그림 대작(代作) 사건이 최종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5월 말에 공개 변론이 열린다고 한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떠오른다.
1917년 뒤샹은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의 '앙데팡당(Independents)' 전시에 변기를 출품했다.
공장에서 만든 변기에 사인을 한 뒤 'Fountain(샘)'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전시를 거절당했다.
주최 측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미술을 뭘로 보는 거야"라고 말했을 것 같다. 그런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변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갖는다면 곧바로 "미술이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면박당할 것이다.
어찌 보면 뒤샹의 흔적이라곤 사인 하나뿐인데, 이제는 변기가 아니라 미술로 대접받는다.
많은 미학자는 이를 두고 "미술의 종말"이라고 평가한다.
'최대한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내야 했던' 기존 미술은 막을 내리고 '일상의 무엇이든 미술이 되는'
새로운 미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뒤샹의 변기를 볼 때마다 이런 충동을 느낀다. 우리 집 변기를 뜯어다 갤러리에 내놓고 "이것도 미술이다"라고
외쳐보고 싶은 충동.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뒤샹의 경우와 조씨 사건은 물론 다르다.
그럼에도 변기나 화투를 생각하면 할수록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미술은 무엇인가, 창작은 무엇인가.
뒤샹의 변기에는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우리 집 변기는 미술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지. 어느 정도까지 혼자 그려야 자신의 창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모두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5월 말 공개 변론이 기다려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9/2020042900237.html
[Oh!쎈 현장] '사기혐의' 조영남, 왜 미술계 뜨거운 감자 됐나(feat.진중권) <발췌> “조영남과는 일면식도 없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 재판에 나왔다. 판결 때문에 미술계의 규칙이 정해진다면 미술계에 궤멸적인 변화가 우려돼서 미술 평론가로서 증언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9/2017080902531.html |
조수가 대신 그린 작품…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나
진중권 지음|천년의상상|404쪽|1만8900원 2016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을 지켜보며 부글부글 끓던 저자가 책을 냈다. 그해 12월 검찰은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아닌 실행한 사람에게 있다"며 조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렇다면 조수를 쓰는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걸까? 미학자인 저자는 이 사건을 현대미술에 대해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笑劇)이라고 본다. 예술 영역에서 저자성(authorship)에 대한 관념은 수백 년에 걸쳐 변해왔지만, 한국 미술계는 아직 19세기 머물러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엔 조수가 있는 게 당연시됐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작가가 손수 그리는 친작 관행이 자리 잡았다. 20세기 현대 예술은 오히려 저자성을 파괴하려 애썼다. "현대 예술이 '혼'을 몰아내기 시작한 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작품 위로 혼을 내리는 초혼 굿이 벌어진다." 신랄한 비판이 조목조목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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