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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성근 울타리

바람아님 2014. 10. 27. 09:30

(출처-조선일보 2014.10.2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성근 울타리

             /이철원

성근 울타리


길옆의 소나무 울타리 겨우 한 길 높이인데
바람이 그 많던 잎 떨구고 눈이 가지를 꺾어놨네.
소를 모는 상놈은 뻔질나게 보이고
말을 타고 웬 놈은 째려보며 지나가네.
막걸리에 친구 불러 이웃집 불이 빤히 비치고
청산이 가려주지 않아 석양빛이 잘도 드네.
이 늙은이 제 아무리 한없이 게을러도
봄이 되면 보수해야지 저대로 놔두겠나.

疎籬(소리)


夾道松籬一丈矬(협도송리일장좌)
風摧密葉雪摧柯(풍최밀엽설최가)
驅牛傖父尋常見(구우창부심상견)
騎馬何人睥睨過(기마하인비예과)
白酒呼朋隣火照(백주호붕인화조)
靑山無礙夕陽多(청산무애석양다)
縱然此老疎迂甚(종연차로소우심)
修葺春來肯任他(수즙춘래긍임타)


영·정조 시대 시인 신택권(申宅權·1722~1801)은 행인들이 자주 오가는 길가 집에 살았다. 
키 작은 소나무로 울타리를 한 집이다. 
가을 지나 겨울이 되자 잎도 드물어지고 가지도 꺾여 휑하다. 
대청에 앉으면 행인의 모습이 빤히 보이고 
이웃집에서 뭘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보인다. 
곤궁한 살림살이가 다 보이는지 째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더 신경이 쓰인다. 
생울타리의 멋도 좋지만 프라이버시가 침해를 받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봄이 오면 손 좀 보리라 굳게 다짐하는 시인에게 석양빛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