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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창작촌] 세월을 비켜간 골목길

바람아님 2013. 10. 24. 14:06

 

 

 

[문래동 창작촌] 세월을 비켜간 골목길

 

 

아침 일찍 배달된 신문을 펼쳐드니 눈에 확 와닿는 기사가 있다. 내가 늘 마음속으로는 가봐야지 하면서

아직껏 미적거리고 있는 문래동 창작촌 이야기가 "이야기가 있는 골목길"이라는 기획 씨리즈를 낸다는

기사다. 그 첫번째가 문래동 창작촌이었다.

기사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문래동 3가의 한 철공소 건물에 그려진 벽화. 버려졌던 옥상이 캔버스로 다시 태어났다. 담장 너머로 샤링 골목이 보인다. 

  골목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다. "골목길 접어들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라는 노랫말처럼 골목은 누군가에겐 추억이 깃든 장소다.
  동시에 지역의 발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책이다. 거센 개발 바람에도 시민의 삶을 품은 채 건재한 골목들이 있다. 공존과

  변화를 시도 중인 골목길을 소개한다.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를 나와 5분가량 걸어가면 아파트 단지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이 나온다. 이어 골목길 양옆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에서부터 "칠컹칠컹"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금속을 자르는 절단기가 토해내는 기계음이다. 반듯하게 잘린 쇳조각은

  "딸캉" 소리를 내며 시멘트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낯선 소리에 섞인 비릿한 윤활유 냄새도 피해갈 수 없다. 냄새에 금세 코끝이

  찌릿찌릿해진다. 시멘트 바닥 사이사이에 들러붙은 누런 쇳물만이 이 골목의 50여 년 역사를 가늠케 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크고 작은 철공소 1350여 곳이 모여 있다. 그래서 '철공소 골목'이라 불린다. 이 중 제법 규모가 있는

  철공소들이 밀집한 골목은 '샤링 골목'이란 이름이 붙었다. 샤링은 시어링(shearing)의 속어. 금속을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는

  작업을 말한다.

 샤링 골목은 1970~80년대 한국 경제를 재단했다. 승용차만 한 철판이 이곳을 거쳐 손바닥만 한 기계 부품으로 변신했다. 40년

  토박이라는 문래직선(直線) 대표 남성진(69)씨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게 이곳"이라며 "이 골목에선 사람 빼곤 못 만드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골목은 60년대 후반 무렵 형성됐다. 청계천에서 이전한 철공소들이 하나 둘 터를 잡으면서다. 지방에서 상경한 20대 청년들이

  망치 한 자루를 들고 땀과 젊음을 바쳐 일했다. 80년대 중반부터 샤링 골목에서 일해 왔다는 이모(50)씨는 "당시엔 철판을 실은

  화물차들이 여의도 근처까지 꼬리를 물고 기다릴 정도로 일감이 많았다"고 말했다. 샤링 골목은 IMF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대형 철공소들은 시화공단 등 지방으로 이전했다.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은 도심 속 섬처럼 고립됐다. 버려진

  건물이 늘면서 슬럼화가 진행됐다.

 골목이 다시 살아난 건 2000년대 들어 20~30대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다.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홍대와 신촌을 나온 작가들이

  주축이었다. 스튜디오 빛타래를 운영하는 사진작가 채경완(34)씨는 이를 "기묘한 동거"라고 표현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덤보

  (dumbo)처럼 폐공장을 예술 창작촌으로 만든 전례는 있지만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곳은 문래동이 전 세계적으로 유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링 골목이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공통의 토대)'의 성공 모델이 된 이유다. 다름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대략 200명의 예술가는 2009년부터 버려진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다. 해마다 골목은 변신한다.

  최근엔 노동자와 예술가들의 교류를 위한 산악회도 결성됐다.

 7년 전 문래동에 온 가구제작자 이경원(45)씨의 말이다. "이곳 분들은 재래식이란 말을 제일 싫어해요. 쇠를 다듬는 건 원초적인

  일이지 결코 재래식이 아니에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어딘가는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게 쇠와 예술이 서로 통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 기사에 문래동 창작촌에 대한 모든이야기가 함축 되어 있다. 그렇다 60~70년대 도시계획은 꿈도 꿀수 없던시절

집과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들 어른들은  일하러 나가고 아이들이 뛰놀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도 골목길이다. 고무줄놀이도, 숨바꼭질도,공놀이도 모두 이 골목길에서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문래동을 향했다.

 

 

지하철 2호선 7번 출구로 나와 문래자이 아파트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 "문래창작촌"안내 데스크가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서 그런지 안내데스크는 비어 있었다.

 

나는 뻐스로 도착했으므로 영등포 등기소쪽에서 진입 하였다 .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강한쇠냄새와 윤활유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걸어 닫은 모습은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잊혀진도시를 연상 시킨다.

한편으로는의문이 생긴다 이런곳에 어떤 골목 그림이 있을까? 하는

 

조금더 안으로 들어가니 공장문에 그린 그림이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어왔나 하고 두리번 거리는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음악이 들린다.

이곳에 카페나 찻집같은건 있을곳이 아닌데 어디서 날까 하고 올려다 보니 허름한 벽돌집 2층 창가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스피커가 보인다.

 

그리고 그옆을보니 이곳 공장에서 철판으로 만든듯한 "빛 타래"란 간판이 잔뜩 녹이슨채

나를 내려다 본다.

 

간판 밑으로는 좁은계단(옛날에 다방 올라가는 계단 같은..)이 보이고 벽면에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You don't take a photograph, you make it" 그말에 이끌려 나는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벽면에는 여러개의 소품액자들이 걸려 있고....

 

커다란 포스터 한장이 앞을 막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란 주제로 이해완 작가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안내 포스터다.

포스터의 흑백사진이 퍽 인상적이다. 고풍스러운 담벼락 가까이에서서 실핏줄 하나까지

선명한 나목이 담장안의 은밀한 내용을 담밖으로 전하려는듯 저녁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흥미를 더해준다.

 

안에서는 관장님과 작가분이 얘기를 나누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커피를 들겠냐며 전시회 안내

카드를 내민다. 나는 황송하여 카드를 받아들고 찬찬히 전시공간을 둘러 보았다.

 

창가에는 작은테이블과 백열전구로  셀프카페를 만들어 놓고,

 

벽면에는 작가의 사진을 전시하고 하단에는 각종 사진관련 서적들이 꽃쳐 있다.

 

관장님은 친절하게 내게 사진촬영을 허락 하시어 몇컷 내부를 촬영하는 행운을 얻었다.

또한 빛타래의 본말에 대해서도 빛과 실타래의 타래라는 의미도 설명해 주셨다.

 

빛타래를 나와 조금 걸으니로봇처럼 생긴 커다란 기계가 길가에 있었다 무엇을하는 기계인지는

몰라도 이곳이 공장지대라는걸 말해 주는듯하다.

나 말고도 몇몇팀들이 이곳 답사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그림을 보고 달려 갔는데 벽면에 파도만 그려넣고 다른것은 이곳 공장에서 샤링하여만든 철

조각품이다 가까이 가니 완전 입체영상이 되었다.

 

다시 이어지는 공장작업장문에 그려진 그림들

 

 

 

 

 

 

 

조금규모가 큰 공장지역을 막벗어난 골목입구에 메니아가 촬영을하고 있어 다가가보니

여기는 조금 다른 느낌을주는 골목길이었다.

 

시멘트불록벽에 그려진 그림

 

공장 담벽에 그려진 귀여운 소녀, 누군가 의자까지 같다 놓았다.

 

이나무는 연탄난로에서 쏟아져나온 녹물을 나무기둥으로하여 그려졌다.

벽 저쪽은 공장이다.

 

오래전 시골에서 꿈을안고 상경하여 이곳에서 심부름부터 시작했던 친구들의 다정했던 시절

사진 한장과 공장창틀을 주황색으로 칠한 창문이 묘하게 어울린다.

 

누군가는 고향 바닷가가 그리웠나 보다. 그림밑에 프라스틱에 심어논 작물도 새롭게 보인다.

 

여기는 또다른 골목길이다. 힘든 공장생활에 벗하며 심어논 선인장 한가지가 꽃을 피웠다.

 

현재는 어렵지만 밝은 무지개빛 꿈을 갖고 있다.

손도장 하나씩 찍으며 꿈도 하나씩 이루어 졌겠지요

 

 

 

시멘트벽으로 꽉막혀 있지만 언젠가는 뚫어질 미지의 문...

 

뭔가를 응시하는 저눈은 슬픈눈이 아니다 희망과 꿈을 간직한 눈이다.

 

눈의 의미는 곧 해소 되었다.잠시 짬을낸 소녀는 낮은 지붕위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와 대화중이다

아마도 소녀의 눈은 방금전 초롱초롱한 그눈빛일거다.

 

골목 한귀퉁이에서 홀로 꽃을 피웠네..

 

 

 

이 한장의 벽화처럼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든이는 한우물을 먹는 이웃이며

연결된 공동체인 것이다.

 

 

 

 

 

창작촌입구 큰길가에 딱하나 있는 카페"수다"

 

다 둘러보고 길건너 문래근린공원의 빈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 오는 고층건물과 지금 내가 둘러본

샤링골목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구로공단이 24시간 불을켜고 언니 누나들이 한땀한땀 이어 붙인 가발은 시골장터 돌아 다니며

큰얘기씨 자른 머리를 사모아만들었고,그것이 수출 효자 상품이 되었었다.

그당시 양평동,문래동은 기계부품을 손으로 일일이 깍아 만드는 손길이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제는 구로공단이 사라지고 디지탈단지화 되면서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양평동,문래동도

재건축되면서 아파트단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본 문래동 창작촌처럼 세월이 비켜간 잊혀진 골목길 아는사람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