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212] 신세대와의 공감을 겨누다

바람아님 2019. 3. 25. 09:52

(조선일보 2019.03.25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2019년 영국 육군의 모병(募兵) 포스터 시리즈.2019년 영국 육군의 모병(募兵) 포스터 시리즈.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 육군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2018년 육군의 신병 모병 인원의 목표가 8만2500명이었으나 지원자는

7만7000명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화된 최첨단 무기와 고성능 장비를

다뤄야 하는 기술병과의 지원자 부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육군 수뇌부는 고심 끝에 런던에 있는 창의적인 에이전시 카마라마(Karmarama)에

해결 방안을 의뢰했다. 카마라마 디자인팀은 신세대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그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은어(隱語)들에 대하여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을 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밀레니얼'은 '자기 확신'에 차 있고, 분위기를 잘 띄우는

'오락반장'은 '열정'이 넘친다.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게임 중독자'는

'추진력'이 강하며, 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폰 좀비'는 '집중력'이 뛰어나다. 성격이 여려 발끈하기 쉽지만

뒤끝이 없는 '눈송이'는 온정이 많고, 어디서나 셀프 카메라를 찍어대는 '셀피 중독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흔히 신세대들의 약점으로 여겨지던 행태들이 정작 군대에서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팀은 각각의 은어를 연상시키는 현역 군인들의 이미지와 디지털 시대의 군대에서 필요한 소양들을 한 세트로 묶은

포스터 시리즈를 디자인했다. 군 수뇌부는 그런 일탈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2019년 1월 초 영국 육군이 16~25세 청년들의 지원을 독려하려고 배포한 여섯 장의 모병 포스터 시리즈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종전처럼 맹목적인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대신, 당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창의적인 접근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