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바우하우스 100년탄생지 독일을 가다] 바우하우스의 역사/ 베를린은 축제 중

바람아님 2019. 4. 1. 12:18


1차 세계대전의 폐허… 그 위에 세워진 학교


(조선일보 2019.04.01 허윤희 기자)


[바우하우스 100년탄생지 독일을 가다] [1] 베를린은 축제 중
바우하우스의 역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이듬해 바이마르에서 새 헌법이 선포됐다.

바로 이 도시에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사진〉에 의해 '국립 바우하우스'가 설립됐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가 첫 선생이었다. 하지만 바우하우스를 재정 지원한 진보 정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이듬해 학교는 문을 닫았다.


그로피우스는 바이마르에서 북동쪽에 있는 산업 도시 데사우로 학교를 이전했다.

1926년 그로피우스가 데사우에 설계한 캠퍼스 '바우하우스 빌딩'이 문을 열었다.

제2대 교장 건축가 하네스 마이어는 개인적 사치품이 아닌 대중성을, 건축과 디자인의 사회적 기능을 더욱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발 경제 대공황의 여파에 따른 혼란 속에서 마이어는 해임된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학교는 폐교를 결정했다.

나치의 손아귀를 피해 많은 마스터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철제 의자, 독서용 램프… 디자인의 뿌리는 100년 전 이곳
  
(조선일보 2019.04.01 베를린=허윤희 기자)


[바우하우스 100년탄생지 독일을 가다] [1] 베를린은 축제 중
獨 건축·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100년 맞아 600여개 행사 쏟아져


100년 전 오늘 독일 바이마르에서 '국립 바우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1919년 4월 1일 36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Gropius·1883~1969)가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세운

건축·디자인 전문학교다. 바우하우스란 '짓다(bau)+건물(haus)'이란 뜻.

그로피우스는 미술·디자인·공예·건축 등 모든 시각예술을 통합해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종합 예술을

만들고자 했다.



베를린 브뢰한박물관(왼쪽)에 전시된 바우하우스의 대표 가구·금속·회화 작품들을 관람객이 보고 있다. 세계문화의집

(HKW·오른쪽)에선 바우하우스가 전 세계 문화예술계에 남긴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허윤희 기자


얇은 철재로 만든 의자, 독서용 램프, 조립식 주택, 기하학적 형태의 그래픽 디자인…. 이 모든 것이 바우하우스에서 탄생했다.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현대 건축과 산업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독일은 지금 '바우하우스 축제 중'이다. 600여 개의 기념 행사가 쏟아지고 있다.


◇독일은 바우하우스 축제 중


지난달 28일 베를린의 브뢰한 박물관에선 '예술과 공예에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가구·금속 작품·도자기·그래픽 등 300여 점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탄생 배경을 보여주는 전시다.

큐레이터 토비아스 호프만씨는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50년 전 영국 미술공예운동에서 이미 시작됐다"며

"산업혁명으로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장인들은 혼란에 빠졌고 시대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미술교육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바우하우스 램프'.'바우하우스 램프'.


그로피우스는 예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면서 학교는 공방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엔 '교수'가 없었고, 중세 길드처럼 마스터(명인)와 도제의 형식을 따랐다.

철제 의자, 독서용 램프 등 바우하우스의 공방에서 탄생한 대표작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만든 '바실리 체어'는 안락의자의 혁신을 가져왔다.

자전거의 철제 프레임에서 영감을 얻어 의자에 최초로 강철 파이프를 썼다.

빌헬름 바겐펠트의 '바우하우스 램프'는 산업사회의 유리와 금속을 거실로 들여온 작품.

장식 없이 단순화하면서 재료의 실용성을 살렸다.

또 다른 전시장, 세계문화의집(HKW)에선 '바우하우스 이마기니스타(imaginista)'가 한창이다.

바우하우스가 세계 곳곳에 남긴 유산과 영향을 살피는 글로벌 특별전. 지난해부터

모로코·중국·일본·미국·러시아·브라질·나이지리아·인도 등에서 열린 전시 프로젝트를

모두 베를린으로 들여와 한 자리에서 펼치고 있다.




21세기 바우하우스 박물관도 줄지어 문을 연다. 바우하우스의 요람인 바이마르에서 6일 '바우하우스 박물관'이 개관한다.

바우하우스 14년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데사우에서도 9월 8일 새로운 박물관이 문을 연다.

세계 최대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소장한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은 9월 6일 베를리니셰 갤러리에서

'오리지널 바우하우스'를 개막한다.


◇"삶의 방식 바꾼 정신 혁명"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운영됐다. 하지만 이 14년간의 실험이 한 세기를 바꿨다.

건축평론가 볼프 폰 에카르트는 "오늘날 산업디자인의 양식을 창조했으며 현대 건축의 발명에 기여했다.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부터 읽고 있는 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1919년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 학교.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바우하우스 100주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바우하우스 협회 2019'의 모토는 '세상을 재고하기(rethinking the world)'.

협회 사무국의 안드레아 브란디스씨는 "바우하우스는 단지 예술과 디자인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

정신 혁명"이라며 "기술, 표현 수단, 사고를 갖고 창조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했다.

그것이 100년이 지나도 유효한 바우하우스의 탐구 정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