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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밤섬의 비밀

바람아님 2014. 1. 26. 14:19
최근 밤섬에 취재를 위해 들어갔습니다.

무인도이면서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출입이 쉽지 않은 곳이긴 해도, 출근길에 매일 서강대교를 지나며그 아래에 있는 밤섬을 보는 터라, 들어가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밤섬에 딱 내린 순간의 광경은 그냥 '신비롭다'는 말로 표현하긴 부족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철새도래지라는 말이 그대로 실감 나게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아서 마음대로 자란 갈대와 나무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무인도지만, 밤섬은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4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던 서울의 어엿한 주거지였습니다. 섬의 모양이 먹는 '밤'을 닮았다 해서 한자로는 '율도'란 이쁜 이름이 붙은 이 섬은 1968년 슬픈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바로 옆 여의도보다 더 큰 섬이었지만, '한강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섬 자체가 아예 폭파되어 없어지고 만 겁니다.

1968년 2월 10일 자 동아일보에는 '밤섬 폭파'제목으로 이런 기사가 실립니다.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의 일환으로 하구를 넓혀 한강 물이 잘 흐르도록 총 1만 7,393평의 밤섬을 폭파하기로 하였다. 이곳에는 부군당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밤섬은 주로 돌산으로 되어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이 섬을 폭파하고 여의도 축석에 필요한 잡석 11만 4천 세제곱미터를 캐낼 방침이다.

서울특별시는 거주민에게 토지와 건물 보상비를 지급,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청평 대지에 연립주택을 건설하여 5가구씩 살게 할 방침이다" 한강의 유속을 빠르게 하고, 여의도 제방을 쌓는 돌을 빼내려고 밤섬을 없앤 뒤 한동안 밤섬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밤섬이 한강의 수면위로 서서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폭파되고 남은 밤섬의 덩어리들에 자연적인 퇴적작용으로 모래와 흙이 쌓이면서 점점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부터 매년 평균 4천400제곱미터씩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한 밤섬은 1966년 최초 측정치보다 무려 6배가 늘어나서, 총 면적이 27만 9천 제곱미터로 엄청 불어났습니다. 27만 9천 제곱미터는 서울 용산공원의 4배나 되고, 시청 앞 서울광장 21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크기입니다.

퇴적학 분야의 권위자인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전승수 교수는 밤섬이 이렇게 몸집을 불린 것은 "원래 있었던 자연을 인공적으로 없앤 것에 대해 자연이 놀라운 자기 복원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강개발계획의 핵심은 한강의 수심을 5미터 내외로 일정하게 하고 한강 변을 직선화시킨 겁니다.

그 결과, 유속은 더 느려지게 됐고 자연적으로 형성됐던 백사장과 강변 습지가 없어지면서 자연 생태계의 평형상태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백사장이 없어지고 유속이 느려지니 폭파된 밤섬의 덩어리들에 모래와 흙 등이 더 많이 쌓이게 된 겁니다. 이렇게 다시 생긴 밤섬이 한강 가운데 있게 되면서 밤섬 안에 작은 수로들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이제 늪지, 습지 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겁니다.

한강 개발로 인해 다른 곳에서는 아주 얕은 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이 하나도 없었는데 밤섬이 다시 만들어지니까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겁 니다. 결국 밤섬이 원래 존재했던 것은 자연적으로 그럴 만했기 때문인데,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도 자연은 놀라운 힘으로 필요한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낸 겁니다.

저는 이제 서강대교를 지날 때마다 마주할 밤섬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만한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을 파괴해도, 자연은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해 놀라운 자기 복원력을 보여준다는 '기적'의 현장이니까요.


[밤섬에 관한 다른 기사내용]

한강 밤섬 50년 만에 6배 넓어져…27만9천여㎡(종합)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 밤섬의 모습을 항공촬영한 사진으로 윗줄 왼쪽부터 순서대로 각각 1966년,
1972년, 1977년, 1982년, 1987년, 1992년, 1997년, 2003년, 2009년, 2012년 모습. 2014.1.20 << 서울시 >>    

1968년 폭파된 후 50년만에 축구장 39개 크기로 커져

한강 개발과정에서 폭파돼 자취를 감췄던 밤섬이 퇴적작용으로 반세기만에 원래 크기의 6배로 커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최신 위성항법장치(GPS) 기술로 측정한 한강 밤섬의 면적이 27만9천531㎡(외곽길이 2천895m)로 나타났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지난 1966년 항공사진으로 처음 측정한 밤섬 면적 4만5천684㎡의 약 6배이고 축구장 39개 면적에 해당한다.

밤섬이 연평균 4천400㎡씩 넓어진 셈이다.

밤섬은 1960년대까지 무인도가 아니라 78가구 443명이 거주하던 유인도였다.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1950년대 중반 제작된 서울 여의도 일대 지형도. 2014.1.20 << 서울시 >>    

    서울시에 따르면 밤섬은 조선왕조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하고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전해 온다.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경강부임도'는 여의도와 밤섬을 분리해 표시해 놓았다.

1968년 2월 당시 정부는 여의도 개발계획과 한강 흐름 개선을 이유로 밤섬을 폭파하고 그때 나온 돌과 자갈은 윤중제(여의도를 둘러싸는 제방) 건설에 썼다.

이 당시 4만6천㎡ 크기의 밤섬은 1968년 폭파돼 수면 아래로 사라졌으나 1980년대부터 다시 섬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밤섬의 면적은 1987년에 16만8천656㎡로 폭파 전의 4배로 커졌고 지금까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섬으로서 형태를 잃었던 밤섬이 약 50년 만에 6배로 커진 것은 퇴적작용으로 토사가 쌓이고 숲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
한강 밤섬 반세기만에 면적 6배 증가, 밤섬의 모습을 항공촬영한 것으로 위는 1966년, 아래는 2012년 모습. 2014.1.20 << 서울시 >>    

    면적 확대는 주로 폭파 전 밤섬이 있던 아랫 밤섬 부분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늘어난 면적과 일부 빠진 부분을 반영해 지적공부를 정비해달라고 담당 영등포·마포구청에 요청했다.

시는 새 측량 결과에 따라 밤섬 생태경관보전지역 고시도 개정할 예정이다.

시에 따르면 밤섬에는 현재 식물 138종과 조류 49종이 산다.

앞서 지난 2012년 밤섬은 물새 서식지로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도시 속 자연공간인 밤섬의 특징과 독특한 역사를 이야기로 구성해 밤섬의 가치를 알리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