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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있는 세계사] 영웅이 된 해적, 드레이크 경

바람아님 2014. 9. 19. 12:30

(출처-조선일보 2014.09.19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해적 왕' 프랜시스 드레이크]

에스파냐 보물선 약탈한 해적 드레이크… 英 여왕에 해적 허가증·귀족 작위 받아
칼레 해전서 에스파냐 무적함대 무찔러… 아메리카 식민지 얻어 국가에 기여
세계 일주에 두 번째로 성공하기도

올여름 극장가에서는 바다와 해적(海賊)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이 개봉되었어요. 
1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명량'에는 일본의 해적 구루지마가 등장해 카리스마를 뽐냈지요. 
물론 이순신 장군에게 호되게 당했지만 말이에요. 조선의 국새를 꿀꺽 삼킨 고래를 찾아 떠난 해적의 소동을 그린 영화도 
있었어요. 소설·영화·만화 등에서 해적은 때로는 바다의 악마로, 때로는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소설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이 애꾸눈의 악당이었다면, 어떤 컴퓨터 게임에서는 해적이 세계를 정복하는 모험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오늘은 해적 이야기의 원조가 된 진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시작한 16세기 유럽에서는 바다를 호령하는 나라가 곧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어요. 
그 선두에 선 나라가 바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었지요.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문물은 배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왔는데, 
진귀한 보물을 가득 실은 배는 언제나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바다에는 해적이 넘쳐났고요.
이 무렵 영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레이크는 어려서부터 낡은 배에서 생활했어요. 13세에 선원 생활을 시작하여 
아메리카와 유럽을 오가며 노예를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멕시코 앞바다에서 에스파냐 배들의 습격을 
받아 물건과 배를 몽땅 빼앗기고 말았지요. 목숨만 겨우 건진 그는 에스파냐에 복수를 다짐했어요. 
이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해적이 되는 건 정당하다며 해적 허가증
(사략 허가증·privateer's license)까지 내주었어요. 국가가 공식적으로 해적을 인정해준 것이에요.

1572년부터 에스파냐 함대를 향한 드레이크의 해적질은 대담하게 이루어졌어요. 
에스파냐 함대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지요. 해적질을 한 후에는 바람과 물결을 이용해 교묘하게 에스파냐 함대를 
따돌리고, 그들의 식민지를 습격하기도 했어요. 
에스파냐는 배를 더 크게 만들고 대포로 무장했지만 드레이크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그를 '엘 드라케(용·악마)'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어요. 
게다가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에스파냐의 보물선을 공격하여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재물을 
약탈했지요. 이렇게 빼앗은 금은보화로 그는 영국 왕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드레이크의 항로.드레이크는 에스파냐 해역을 따라 항해하던 중 1577년부터 1580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세계 일주까지 하게 되었어요.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셈이에요. 
마젤란은 항해 도중 필리핀에서 사망했으니, 드레이크는 자신의 배로 끝까지 항해에 
성공한 첫 번째 선장이 되었지요. 황금으로 가득 찬 드레이크의 배를 보고 사람들은 
'살찐 황금 암사슴 같다'고 말했답니다. 
이후 그의 배는 '골든 하인드(The Golden Hind·황금 암사슴)호'로 불렸어요.


드레이크에게 당한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2세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어요. 
즉시 영국에 항의하며 해적 드레이크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지요.

 (왼쪽)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해적 드레이크를 넘겨 달라’는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의 요구를 무시하고,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렸어요. 

(오른쪽)영국의 항구도시 플리머스에 세워진 드레이크 동상. /Corbis 토픽이미지 


그러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드레이크를 궁으로 불러 영웅이라 부르며,귀족 작위까지 수여해요. 

남의 나라 배를 노략질하던 해적 드레이크가 영국 귀족인 '드레이크경(卿)'이 된 거예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분노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게다가 가톨릭 신자인 펠리페 2세는 신교를 믿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었거든요. 

영국을 차지한 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無敵艦隊)'를 편성하였어요.

팽팽한 긴장이 감돌던 두 나라는 결국 전쟁에 돌입합니다. 
1588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칼레 앞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졌어요. 
에스파냐는 3만명의 군대와 150여척의 군함을 이끌고 나타났지요. 
이에 맞서는 영국은 하워드 총사령관을 중심으로 
바다에 익숙한 해적 출신의 호킨스, 드레이크 등이 8000여명의 군대와 80여척의 함대를 이끌었습니다. 
숫자상으로는 에스파냐가 우세해 보였지만, 작고 날렵한 영국 함대에 덩치 큰 무적함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어요. 
드레이크는 화약을 가득 실은 배를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향해 돌진시켰지요. 
화염을 피하기 위해 에스파냐 함대는 뿔뿔이 흩어졌고,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우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칼레 해전의 패배는 에스파냐의 쇠퇴로 이어졌어요. 
반대로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발판을 마련했고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도 기회를 잡아 독립했습니다.

그 후에도 드레이크는 해적으로 활약하다가 배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해요. 
그의 시신은 납으로 만든 관에 넣어 바다에 던져졌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해적 왕'다운 최후라고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