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찬킹청의 중국정치 뚫어보기⑮ 남중국해에서 중·베트남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

바람아님 2015. 1. 16. 11:20

(출처-조선일보 2014.06.04 찬킹청 홍콩 신보 총편집인)


1960~70년대의 ‘좌파’ 학생들은 베트남에 대해 남모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 당시 미국의 백악관과 국방부가 전세계를 호령했고, 쿠바에서 미국과 대치하던 소련까지도 결국에는 꼬리를 내리고 
군사를 철수했다. 
그러나 베트남만이 유일하게 남아 미국과의 전쟁을 감행했다. 
20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존심은 무너지게 되었고, 결국 평화협정(닉슨의 안보담당 보좌관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득토가 체결한 협정으로, 이 둘은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는 했으나 이 협약이 베트남에 
평화를 안겨주지는 못했다)이라는 미명하에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북베트남이 베트남을 통일했다. 
프랑스군을 쫓아내고 미군까지 철수시킨 베트남은 어떻게 보면 국가는 가난하지만 국민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외국 열강을 
물리친다는 점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닮은 점이 있다.

2011년 중국과 아세안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뒤로 양자 간 무역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아세안 내부에서도 중국을 바라보는 입장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며 필리핀과 베트남이 중국과 가장 빈번하게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미국의 오랜 동맹국으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을 
이용하면서 필리핀과 중국 간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은 1974년과 1979년에 중국과의 전쟁을 치렀다. 
과거에도 베트남은 아시아를 호령하던 중국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으며, 현재 남중국해 영토분쟁으로 빚어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일촉즉발의 긴장국면은 국제사회 및 금융계가 매우 주목하고 있는 문제이다.

남중국해에서 중·베트남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중국의 이웃나라이자 과거 속국이었던 베트남은 베트남전쟁 
당시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은 계속해서 중국의 영향력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이고 있다. 7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 종전 후, 
북베트남은 베트남을 통일하고 소련의 편으로 돌아섰다. 
소련의 지지하에 베트남은 중국이 지지하던 공산캄보디아 
정권을 무너트리고 캄보디아 및 라오스와 연방을 형성하는 
등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1978년 11월 3일, 베트남은 소련과 군사원조의 성격을 띤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뒤, 다음 해 1월 다시 소련과 한층 더 
강화된 내용의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며 군사동맹을 구축해 
중국에 위협을 가하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는데, 
소련은 중국의 북쪽 국경지대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한편 
남쪽으로는 베트남과 손잡고 중국의 안보를 위협했다. 
중국은 소련의 공세를 뚫고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패권국가임을
주장하는 베트남의 야심을 무너트리는 한편 미국에 ‘선의’를 
보여주기 위해 1979년 2월 베트남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2월 12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내린 
<중·월국경자위반격작전명령>으로 일어난 
이 전쟁은 28일간 이어졌고, 중국이 먼저 철군하면서 종결되었다.

비록 이러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1979년 이전의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지금과 비슷한 점이 상당수 존재한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로 의지할 곳을 잃은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회복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의 경제적 교류가 
빈번해졌다. 중국 정부의 통계로는 1991년 11월 양국관계의 정상화 이후로 양국 간의 무역액이 크게 증대되어 2011년에 
이미 관계 정상화 시기의 천 배에 달하는 4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5년에는 600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베트남은 과거 베트남전쟁 시기에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가도 종전 직후 소련의 편으로 돌아서 중국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 전력이 있는데, 현재에도 이는 여전하다. 1990년대 베트남은 중국과 교류를 시작하고 나서도 미국과의 우호 
관계 증진을 고집했다. 이는 경제적 이익의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며 아마도 이는 베트남이 지금도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중국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소련이 베트남을 한편으로 끌어들인 목적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었다. 
현재 미국이 베트남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것 역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라오스를 편입시키는 등 자신들의 패권을 주장했다. 
지금도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에서 필리핀은 물론이고 먼 이웃인 일본과도 공조하여 중국의 섬을 봉쇄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즉 현재의 정세는 1979년 이전의 중국, 베트남, 소련 및 
캄보디아와 라오스 사이의 다자간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는 올해 3월 포브스지 웹사이트의 개인칼럼에서 ‘속박을 벗어난 중국, 해상질서 재편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에 따르면, 남중국해 영토분쟁에서 중국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원인은 그 영해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영해 주권에 대한 주장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남중국해 영토분쟁은 
각국이 적용하는 원칙이 달라 빚어진 분쟁으로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필자는 리콴유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역사적 배경과 지금의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해보았을 때, 중국과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토분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