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1.0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오래전부터 나는 대학 총장님만 만나면 사뭇 파격적인 제안을 드렸다.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 학기 혹은 한 해 동안 세상으로 내쫓아달라고.
고교 시절 내내 시험지에 적힌 문제만 풀어온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의 문제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온몸으로 부딪쳐볼 기회를 주자는 제안이다. 퍽 여러 총장님께 열변을 토했건만 아무 대학도 채택하지
않은 가운데 정부에서 덜컥 중학생을 위한 자유학기제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이참에 성적이나 따라잡자며 아이를 학원에 더 깊숙이 잡아넣으려는 부모들을 보며
중학교가 과연 알맞은 시기인지 의문스럽다.
자유학기제와 더불어 '자유취업제'를 제안한다.
자유학기제와 더불어 '자유취업제'를 제안한다.
대기업 취업 시험이 대학입시의 지옥을 그대로 재현하는 현실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일거리들을 발굴하고
체험할 기회를 주자는 제안이다. 워낙 배낭여행에 익숙한 세대라서 최소한의 경비만 제공하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누빌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며 세상을 품어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현하는 젊은이들에게 '마패'를 쥐여주자.
여행과 숙식 등 기본적인 활동에 마패 카드를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차익은 세금이나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현실을 왜곡하자는 제안으로 들릴까 우려스럽지만 자유 취업을 선택한 어사(御史)들은 청년실업 통계로 잡지 않았으면 한다.
일에 대한 정의가 변하고 있는 마당에 고주알미주알 죄다 실업 통계로 잡아넣어 가슴 철렁할 수치를 만들어놓고 우울해할
까닭이 있을까 싶다. 예전에 우리가 수 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 때에는 직장이 없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규정 따위는 없었다.
사냥감에 화살을 꽂은 사람이 물론 더 먹었지만 어영부영 참여한 이들도 다 함께 먹었다. 그러다 평소 꾀만 부리던 누군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꺼내놓는 바람에 인간 사회가 도약한 게 아니던가?
자유 취업 어사 중에서 스티브 잡스가 그저 한두 명만 나와도 창조경제는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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