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집권 세력은 이해가 다소간 엇갈린다. 시민들의 뜻이 정치에 반영되는 사회들에선 그런 엇갈림이 제한된다. 압제적 사회들에선 집권 세력의 이익이 우선 추구되고 국익은 집권 세력에 도움이 되는 한도까지만 고려되므로, 엇갈림이 커진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공산주의 이상향을 세우려 권력을 독점한다고 말해왔다. 중국이 1970년대 말엽 공산주의 명령경제를 버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했으므로, 공산당 정권은 정당성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쥔 채 민족주의를 내세워 정당성을 되찾으려 한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참패한 뒤부터 1945년 일본이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외세에 시달렸다. 이런 “백년국치(百年國恥)”를 끝낸 것은 공산당이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주역은 미국이었다. 중국은 조역에 머물렀고, 그나마 당시 중국을 대표한 것은 국민당이었다.
공산당이 내세우는 것은 한국전쟁이다. 그들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에서 ‘북조선’을 도와 미국에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이 백년국치를 끝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국은 한반도의 분열을 즐긴다. 악한 국가(rogue state)인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지녔다는 사실은 미국과의 교섭에서 좋은 패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정권이 북한 정권을 감싸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중국에 미칠 영향이다. 북한에서 압제적 정권이 무너지면 자유화의 바람이 중국에도 불 것이다. 한 나라의 혁명은 이웃 나라들에서도 혁명의 기운을 일으킨다. 최근의 예는 ‘아랍의 봄’이니, 당국의 자의적 단속에 죽음으로 항의한 튀니지의 젊은 행상은 폐쇄적 아랍 사회들에서 압제적 정권들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얼마 전 홍콩 당국의 행상 단속이 거센 반중국 시위를 부른 상황은 ‘천안문 사건’의 악몽에 시달리는 중국 정권의 꿈자리를 더욱 어지럽힌다.
중국 정권은 튼실해 보이지만, 정치적 전체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결합된 중국 체제는 심각한 모순들을 품었다. 특히 공산당 정권의 이해와 사회 전체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들이 늘어난다. 북한 정권의 비호도 그런 부분들 가운데 하나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중국 사회에 두루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공산당 정권은 당장 생존을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 정권은 중국에 짐만 되는 북한 정권을 큰 비용을 들여서 떠받친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 그들은 속셈을 숨기려 별의별 연기를 다 한다. 북한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이 작다고 늘 강조하고, 심지어 북한의 모욕적 대접을 사서 받는다. 북한이 폐쇄적이라 경제적 제재가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논리도 편다. 북한의 위협을 막을 ‘사드’가 중국을 위협한다고 시비를 걸어 논점을 흐린다.
중국 정권의 속셈이 그러하므로, 우리로선 대응하기 힘들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의 유지와 핵무기 개발 사이엔 유기적 연관이 없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의 관계를 흔들어서 미국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려는 중국의 전략에 방해가 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근본적 대응은 도덕적 접근이다. 악한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돕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부도덕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고려를 바탕으로 삼아야 우리 외교는 효과적일 수 있다.
현실정치의 영역인 외교엔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통념은 피상적이다. 도덕심은 사람의 천성이어서, 도덕은 모든 일들에서 판단을 인도하는 원리다.
‘도덕 무기’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한 지도자는 윌슨 대통령이니, 비현실적 이상이라 여겨진 민족자결주의는 이내 국제 질서로 자리 잡았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권이 국제적 여론으로 무너진 것, 무엇보다도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에 도덕적 차원을 더해서 “사악한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은 도덕적 접근의 강력함을 일깨워준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원래 중국의 기술과 자금으로 시작했고 뒤에 파키스탄의 기술적 도움을 받았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도 중국이 원조했으므로, 북한 핵무기에 대한 중국의 도덕적 책임은 총체적이다.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그 점을 강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약자를 궁극적으로 지키는 것은 도덕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