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22 어수웅 기자)
美 예일대 스나이더 교수
직업윤리·사생활 보호·용기 등 민주주의 위한 20가지 교훈 제시
가짜뉴스·네거티브 등 홍수… 파시즘·나치즘 경고해야
폭정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 조행복 옮김
열린책들 | 168쪽 | 1만2000원
정치의 계절이다. 아니 위기의 계절이다. 대선 앞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내일(23일)로 다가왔다.
흥미롭게도 극우(極右)로 불리는 르펜의 최대 지지층은 중·장년이 아니라 2030. '청년 실업' 탓이
제일 크다. 르펜은 EU를 탈퇴하고,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은 다른 모든 나라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고, 영국의 브렉시트도 고속 주행 중이다. 구미(歐美)뿐인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행정·사법·입법권을모두 장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성속(聖俗)을 모두 지배하는
'21세기의 술탄'을 예고했다.
미 예일대 사학과 티머시 스나이더(48) 교수의 '폭정'(On Tyranny)은 트럼프 시대에 대처하는 시민의 자세에 관한 책이었다.
현지에서도 두 달 전 출간된 최신작. 하지만 이 책의 20가지 교훈을 읽고 나니,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세계 시민들이
함께 경청하고 참고할 제안이라 판단했다.
구호로 그치는 게 아니라, 20세기 역사에서 얻은 깨우침을 예로 들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가지 리스트부터.
①미리 복종하지 말라 ②제도를 보호하라
③일당(一黨) 국가를 조심하라 ④세상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
⑤직업윤리를 명심하라 ⑥준(準)군사 조직을 경계하라
⑦무장을 해야 한다면 깊이 생각하라 ⑧앞장서라
⑨어법에 공을 들여라 ⑩진실을 믿어라
⑪직접 조사하라 ⑫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⑬몸의 정치를 실천하라 ⑭사생활을 지켜라 ⑮대의에 기여하라
16다른 나라의 동료로부터 배워라 17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18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19애국자가 돼라 20최대한 용기를 내라.
얼핏 시민단체 행동 지침으로 보이지만, 이 안에는 20세기 동유럽사(史)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전공한
역사학자의 경험과 대안이 있다.
히틀러를 닮아간다고 비판받는 3인의 ‘자국 우선주의’ 정치인. 지난 2월 독일 뒤셀도르프 축제에 등장한
트럼프 미 대통령,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 그리고 히틀러 인형이다(왼쪽부터).
21세기의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굴복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가령 '⑧앞장서라' 사례를 보자. 지금이야 히틀러에 대한 저항을 너도나도 자랑하지만,
1930년대 당대의 지배적 정조는 보신(保身)이었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체코를 먹어 치웠을 때, 강대국은 제지하지 않았다.
침묵과 순응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가 순식간에 독일로 넘어갔다.
파죽지세. 트럼프 시대의 '미국 우선' 구호와 달리, 1940년대의 'America First'는 독일과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자는
방어적 취지였다.
스나이더 교수가 '앞장서라'의 대표 사례로 호명하는 인물은 영국 총리 처칠이다.
눈치 보던 전임자 체임벌린과 달리,"살든 죽든 아무래도 좋은 시절. 영국인의 기운차고 침착한 기질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며 대독(對獨) 항전의 깃발을 든다.
스나이더는 말한다.
"당신이 모범을 보이는 순간 현상 유지의 마법은 깨지며, 그 뒤를 다른 이들이 따른다."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 차원에서도 인용해보자.
'⑨어법에 공을 들여라'가 이 차원의 교훈이다.
얼핏 예법에 관한 주문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독서와 사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다.
이미지에 도취되면 사건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TV로 방송되는 뉴스는 다음 뉴스로 대체될 때까지만 '새로운' 것.
마치 연이은 파도에 부딪히지만, 결코 대양(大洋)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과 조지 오웰의 '1984'를 인용한다.
시민이 쌍방향 TV에 홀린 동안 소방관들은 책을 찾아 불태우고(화씨 451), 책은 금지되고 TV는 쌍방향이어서 정부가
늘 시민을 감시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1984). 이미지의 지배와 책의 금지가 어휘 제한을 낳고,
이에 따른 사고의 제한을 경고했던 고전(古典)들이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호기롭게도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체제 경쟁의 역사는 끝나고, 인류에게는 번영만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2017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주장이 신기루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오히려 퇴행이다.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터키의 에르도안. 세계 각국의 '스트롱맨'들은 좋았던 시절의 과거를
상기시키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세금을 깎아주고, 국가 채무를 없애고, 사회정책과 국방에 들어가는
지출을 늘리겠다는 스트롱맨들의 공약은 가능한가.
닭장에서 꺼낸 달걀 하나로 아내에게는 삶아주고, 아이에게는 수란(水卵)을 해주고,
다시 병아리를 만드는 '마법의 달걀'은 없다고, 역사학자는 스타카토 화법으로 강조한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낱말로 선정한 단어는 '탈진실'(Post Truth)이었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영국이나 미국뿐만이 아니다.
만발하는 '가짜뉴스'와 '네거티브' 홍수의 대선을 치르며, 우리 역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前) 단계임을 스나이더 교수는 경고한다.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20세기를 연구한 역사학자는, 다시 한번 말한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가르침을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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