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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명물 '노부부 키스' 벽화… 누가 그린 건지 궁금하셨죠?

바람아님 2018. 4. 24. 07:44

조선일보 : 2018.04.20 00:52

5년 세월 흐르며 비바람에 훼손… 구청서 복원 위해 작가 수소문…

찾고보니 최전방 장교 원영선씨
"과거 'We are young' 팝송 듣다 화목했던 조부모 떠올라 그렸죠… 제 손으로 벽화 손보게 돼 뿌듯"

19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고당길에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20대 남성이 덕성여고와 덕성여중을 잇는 육교 아래 흰 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몰려든 이들은 그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중국인 여성 5명은 그에게 다가가 손에 든 책자를 보여주며 "당신의 그림이 여기에 있다"며 반가워했다.

남성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노부부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맞춤하는 그라피티(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 작품이다. 가로 7m, 세로 2m 정도 크기다. 2013년 감고당길 벽에 처음 그려졌다. 오른쪽 위에'위아영(We are young·우리는 젊다)'이라고 쓰여 있어 '삼청동 위아영 벽화'로 불린다. 유명한 드라마와 CF의 배경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비와 바람에 훼손됐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종로구청에 "벽화를 복원해달라"고 잇따라 민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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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의 최전방 부대 소속 원영선(25) 중위가 자신이 그린 서울 삼청동‘위아영(We are young)’벽화 앞에서 스프레이 통을 들고 웃고 있다. 원 중위는 최근 벽화 복원을 위해 애타게 작가를 찾던 종로구청과 연락이 닿아 다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상훈 기자

하지만 작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구청은 지난해 9월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에 작가를 찾는 공고문을 올렸다. 입소문을 통해 일주일 만에 작가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미술과 전혀 관련 없는 육군 장교였다.

'위아영'의 작가 원영선(25·3사 51기) 중위는 2009년부터 'SI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경기도 파주의 최전방 부대 소속인 원 중위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GP(최전방 경계 초소)의 GP장(長)으로 복무 중이다. 위아영 벽화의 영감은 대학교 2학년이던 2013년 감고당길을 걷다 떠올랐다. 미국 밴드 펀(Fun)의 '위아영(We are young)'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걷던 원 중위는 불현듯 조부모님이 생각났다. 원 중위는 "평소 두 분이 아끼고 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며 "젊은이들이 오가는 삼청동 거리에 그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 중위는 벽의 소유권을 가진 덕성여고에 문의해 허가를 받고 그림 작업에 들어갔다.

원 중위는 구청에서 작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듣고 재능 기부로 벽화를 복원하기로 했다. 19일 오후 중국 여성들의 구애를 받으며 작업하던 남성이 원 중위다. 19일 복원 작업에 들어간 벽화는 20일에 완성될 예정이다. 원 중위는 "제 손으로 벽화를 손보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원 중위는 "할아버지께서 6·25전쟁에 참전하신 얘기를 들으며 군인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원 중위의 할아버지 원도종(86) 옹은 학도병으로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충무무공훈장을 포함해 13개의 훈장을 받았다. 원 중위는 "할아버지께선 군 생활을 할수록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며 "GP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언젠간 북한에서 평화를 주제로 벽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고 했다.


권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