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소나무> 初老의 混沌 / 芯 九 나는 요즘 가끔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이선생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사상이 담긴 "임금과스승,부모는 일체이니 정성껏
받들어야 한다" 라는 말을 했으며 또한 제자거칠척사영불가답(弟子去七尺師影不可踏)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라고 어렸을때는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등,하교때 남학생은 까까머리에 모자 쓰고 교복을 입었으며 여학생은 단발머리에 하얀카라를단 교복을입었는데 그 모습들이 참 예뻤다. 예전의 학생 모습은 다 이랬다. 십리길을 아침마다 걸어서 등교하다 초등학교인가 중학교때 처음 시내뻐스라는게 생겼다. 당시는 배차간격도 길고 또가까운 거리에 사는 학생도 뻐스가 타고 싶어 2~3정거장 거리 인데도 뻐스를 타는 바람에 늘 만원이다. 그런 가운데 어른이라도 탈라치면 힘들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학생은 용수철처럼 일어나 어른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걸 당연시 했으며 자리에 앉은 학생의 무릎위에는 앉지 못한 학생들의 가방이 늘 대여섯개씩 쌓였다. 이렇게 어른을 공경하고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살아 온 것이다. 그러나 요즘시대에 이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에 겨워 뻐스흔들리는대로 몸을 내 맡긴 어른을 보고도 모른채 외면하는게 요즘의 세태다. 오죽하면 옆집 노인이 죽었는데도 열흘이 넘도록 그 죽음을 모른채 살고 있을까 나는 이런 세태를 비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으니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진에 취미를 붙이면서 자주 먼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는데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닌다. 그러나 가급적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간다. 나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이도 무관심으로 그런 나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가끔 내릴때가 된 노인들은 내리면서 내손을 끌어 자기 앉았던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서도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 본다 나 보다 더 나이든 노인이 주변에 없는지... 나는 아직 젊고 한창 일할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노인으로 보이는것 같아 이런땐 자리에 앉으면서도 조금은 섭섭하다. 그렇다 나도 벌써 초로의길에 접어 들었다.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미숙아처럼 천진 난만하다. 꿈도 있다. 하는 행동도 그러하니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내몸과 마음이 따로가니 내마음을 볼수 없는 사람들이 나의 행동에 대해 주책이라 하지는 않을런지 어른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다. 체신머리 없이 함부로 날뛰지 말고 어디가서나 나이에 걸맞게 처신하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하라고 또한 말은 마음의 얼굴이니 무게있고 신중해야 한다고.... 아! 그러나 이를 어쩌나 생각은 그리하나 몸과 마음이 따로 늙어가고 있으니..... 영국시인 Allfred Edward Housman (1859~1936)은 약관의 나이에 그의 詩 Loveliest of Trees 에서 봄을 이렇게 예찬했다.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벚나무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벚나무는 지금 가지 따라 만발한 꽃을 드리우고, 부활절 맞아 흰 옷 입고 수풀 속 승마길 가에 화창하다. 이제, 내 칠십 평생 중 스물은 다시 돌아올 길 없으니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내게 남는 것은 오직 쉰뿐. 그리고 활짝 핀 꽃을 보기엔 쉰 봄은 너무 짧으니 수풀가로 나는 가야지, 눈꽃송이를 피운 벚꽃을 보러." 그는 봄을 예찬 하면서 겨우 스므번 보고 앞으로 쉰번 더 볼 수 있는 봄이 짧다고 아쉬워 했다. 그렇다 내마음 또한 20대에 머물러 있건만, 세상은 나를 노인으로 만들어 가고 더 볼수 있는 봄날의 숫자를 잘라 내고 있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永遠한 未熟兒 인가?
初老는 混亂 스럽다.
♪ Under a Violet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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