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7.01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 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크메르루주 정권은 사상 최악의 독재 체제였다. 이들은 농업에 근거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삼아 극단적인 사회공학을 실험했다. 사유재산을 없애고, 서양에서 들어온 모든 제도를 폐기했다. 학교, 병원, 공장, 은행이 문을 닫았고, 화폐도 사라졌다. 서양 의술을 버리고 전통 의술에만 의존하다 보니 말라리아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도시 거주민들은 전부 농촌으로 끌고 가서 농부로 만들었다. 농사일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하루 12시간씩 쉼 없이 일하다가 영양부족과 과로, 질병으로 죽어갔다. 배고픔에 시달려 산딸기라도 따먹으면 사적 소유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죄로 처형당했다. 배운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커서 책을 불태우고 모든 지식인을 살해했다. 교사와 상인들, 심지어 안경을 끼거나 손이 흰 사람들도 배운 사람 티가 난다는 이유로 죽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일을 주도한 폴 포트 같은 사람들은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여 프랑스 문학에 정통하고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지식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의 모든 측면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가족 및 친족 관계도 인위적으로 변형시켰다.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연락한 사람들은 처형되었다. 부모 세대는 이미 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구제 불능이므로 아이들을 따로 떼어내어 세뇌해야 한다고 보았다. 어린아이들을 '당 독재의 도구'라 부르며 공산주의 사상과 함께 고문과 처형 기술까지 가르쳤다. 자신의 계층을 드러내는 독특한 어법을 가진 캄보디아 언어도 손을 대서 혁명에 어울리는 어법과 용어를 강요했고, 옛날 말투를 쓰면 사형당했다.
종교도 탄압 대상이어서, 가톨릭 성당과 불교 사원을 파괴했고, 무슬림들에게는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게 만들고 이를 거부하면 처형했다. 이런 식으로 죽은 사람 수가 140만명에서 200만명 사이로 추산된다. 1975년 이 나라 인구가 700만명 정도였으니, 국민 20% 이상이 학살당한 셈이다. 통제되지 않는 과격한 이상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소가 설치되어 '킬링필드'의 학살 주도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반(反)인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해 늦게나마 역사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크메르루즈 잔혹사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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