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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People] '극좌 코빈'때문에… 英 노동당원 12만명 탈당

바람아님 2019. 2. 21. 18:51

(조선일보 2019.02.21 파리=손진석 특파원)


철도·우편 서비스 국유화 신념, 대학 무상교육·평등교육 주장
사립中 보내자는 아내와 이혼도… 지지율 17%… 37년래 최저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19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연례 제조업 연맹(EEF) 콘퍼런스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지난 18~19일 이틀 사이 노동당 의원 8명이 코빈 대표의 급진 좌파 노선 등을 비판하며 탈당했다.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19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연례 제조업

연맹(EEF) 콘퍼런스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지난 18~19일 이틀 사이

노동당 의원 8명이 코빈 대표의 급진 좌파 노선 등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8일 영국 노동당 하원 의원 7명이 제러미 코빈 당 대표의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정책과 당내 뿌리 깊은 '반(反)유대주의' 성향 등에 반발하며

집단 탈당했다. 크리스 레슬리 의원은 이날 탈당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함께

활동하고 믿었던 노동당과 지금의 노동당은 다르다"면서 "당이 극좌 세력의 조직 정치에 장악됐다"고 주장했다.

이튿날인 19일 조앤 라이언 의원도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탈당 서한에서 "40여 년간

노동당원이었으나 더는 노동당 의원으로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집권 보수당과 함께 양당 정치의 한 축을 이루는 노동당은 작년 한 해 12만명이 넘는 당원을 잃었다.

2017년 연말만 하더라도 50만명이 넘는 당원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올해 1월 기준으로는 38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당비 수입이 전년보다 600만파운드(약 87억원) 이상 줄어들었다.

익명의 한 노동당 간부는 더타임스에 "지지도든 재정 상태든 우리 당은 무일푼(skint)"이라고 한탄했다.


영국 언론은 노동당이 몰락한 원인이 제러미 코빈 당 대표에게 있다고 분석한다.

코빈이 급진적인 좌파 노선을 걷는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표시하는 중도층이 많다.

최근에는 그가 브렉시트를 앞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바람에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모리'가 이달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코빈에 대한 지지율은 17%였다.

역대 입소스 모리의 조사에서 노동당 대표의 지지율로는 1982년 마이클 풋의 13% 이후 37년 사이 최악의 지지율이다.

연일 난타당하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같은 조사에서 33%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을 보면 코빈의 인기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엿볼 수 있다. 영국 언론은 "코빈 때문에 메이 총리가 반사 이득을 본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코빈은 진보 정당인 노동당에서도 맨 왼쪽 노선을 걷는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철도, 우편 서비스를 재국유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고, 대학 등록금을 없애자며 무상 교육을 주장한다.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대폭적인 증세를 요구한다. 핵잠수함 현대화 사업을 반대하는 반핵(反核)주의자이기도 하다.

공립학교에서 평등한 교육만 받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코빈은 아내가 아들을 사립 중학교에 넣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비타협적이다.


코빈은 1949년생으로 가난한 전기 기술자 아들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 출신인 메이 총리와 대조적으로 기술전문대를 중퇴한 것이 최종 학력이다.

노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1983년 런던 북부 이스링턴 선거구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32년간 7선에 성공한 끝에

2015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32년간 의정 생활을 하면서 500번 넘게 하원에서 당론과 배치되는 투표를 했다.

극좌 노선의 소신을 꺾지 않으려고 자주 당론을 거스른 것이다. 그가 당 대표에 당선된 것은 이변이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자전거를 즐겨 타는 소탈한 모습으로 당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1906년 노동 단체들을 규합해 창당한 노동당은 지금까지 7명의 총리를 배출하며 40년 가까이 집권한 수권 정당이었다.

대체로 온건한 중도좌파 노선을 걸었다.

특히 1997년 취임해 10년간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대폭 수용한 중도 이념인 '제3의 길'을

주창해 노동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런 전통이 있는 노동당에서 코빈이 외곬으로 극좌 노선을 고집하자

당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코빈은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노동당 내부에서는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해 EU에 잔류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브렉시트를 원하는 보수 및

중도층으로부터 비난이 쏟아질까봐 코빈은 우물쭈물하고 있다. 결국 코빈은 "조기 총선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2 국민투표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어 안팎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일간 데일리미러는 "코빈 때문에 노동당 내부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고 이것이 보수당에는 '선물'이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