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표여, 앵무배여, 백년 삼만육천 일에, 하루에 삼백 배씩 기울여야지(로자杓 鸚鵡杯 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이 읊은 ‘양양가’이다. 술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이백의 술시에 등장하는 노자표와 앵무배는 뭔가 술그릇과 술잔 이름이기는 한데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65년 조사된 중국 동진(317~420) 시대 왕흥지 부부묘에서 1점, 2015~16년 사이 영주시 신하진 전약묘촌에서 발굴된 서진(265~613)시대 가족묘지에서 1쌍 등 중국에서 단 3점만 발굴됐다. 일본에서는 아예 출토예가 없다.
그런데 이백이 읊은 앵무배(잔)가 다른 곳도 아닌 신라의 도읍인 서라벌(경주)의 황남대총 남분에서 1쌍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또한 이 앵무잔은 고생대 캄브리아기 전기에 출현했고, 그후 멸종한 암모나이트와 유사하고 지금도 6종이 살아남은 앵무조개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김종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학예연구사는 학술지 <보존과학> 제22집에 게재한 ‘경주 황남대총 출토 신라 앵무새’ 논문에서 “1973~75년 조사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조개 유물을 분석한 결과 앵무조개 금제와 금동제잔 1쌍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약 3만점의 유물이 쏟아진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60여점의 조개껍데기가 출토된바 있다. 그러나 금속이 붙은 이 유물들은 워낙 훼손이 심해 별다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분석된 것이다.
이중 금동테두리 앵무잔은 전체크기가 110㎜ 정도이며, 손잡이 길이는 32㎜이며 폭은 80㎜ 정도다. 그러나 파손편으로보아 대략 8.5~9.5㎝로 추정할 수 있고, 남아있는 조개 두께는 0.81~0.93㎝이다. 금제 앵무잔의 경우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지만, 앵무조개 특징인 껍데기 내부 격벽은 그대로 남았다. 폭은 5.2∼5.4㎝로 짐작됐다. 금동제는 동에 수은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했고, 금제는 금과 은 합금으로 금 성분이 약 88%다.
앵무잔 제작에 쓰인 앵무조개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일컬어진다. 앵무조개는 고생대 실루리아기(4억 4370만년전~4억1600만년전)에서 중생대 백악기(1억3500만년전~6500만년전)까지 존재했다가 멸종된 암모나이트와 가까운 종이기 때문이다. 껍질 지름이 20㎝, 껍질의 폭은 9㎝ 정도되며 안쪽으로 감겨있다. 나사모양 층의 밑부분이 앵무새의 부리 같아서 앵무조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주보고 짝짓기하고 이때 수컷의 생식용 촉수가 알을 수정시킨다. 암컷이 수정된 알을 얕은 바다의 바위에 붙여놓으면 이 알들은 8~12달 후 지름 3㎝ 정도의 새끼로 부화한다. 최대 20년 이상 살며, 사모아 제도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태평양과 호주 부근의 인도양에서 서식한다. 주로 300~500m 사이에서 나온다.
이 앵무조개로 만든 앵무잔 관련자료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문헌에 ‘앵무배’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임금이 종친이나 신하에게 하사하는 귀중한 물품 중 하나로 알려져왔다. 예컨대 1480년(성종 11년) 1월24일 제주출신의 첨지중추부사 고태필이 “제주도에서 진주배와 앵무배를 바치는데 그 폐단이 적지 않다”고 아뢰니 성종이 “폐해가 백성에게 미치게 된다면 마땅히 감면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성종실록>에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유물이 발견된 예는 거의 없다. 김종우 학예사는 “금동제 테두리 앵무잔의 경우 중국 서진 및 동진시대 앵무잔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서 수입한 완제품일 수 있고, 신라가 앵무조개를 수입해 제작한 순수 신라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황남대총 앵무잔이 금동제 테투리와 함께 크기와 형태가 다른 금제 테두리의 두가지로 제작됐고 표면 마감처리를 옻칠 추정 유기물을 사용한 것으로 미뤄 순수 신라산일 가능성이 높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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