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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北 위협에 '보초 기러기' 안 되려면

바람아님 2015. 1. 16. 10:39

(출처-조선일보 2015.01.16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조선 중기 문신인 최연(崔演·1503~ 1546) 선생이 쓴 '안노설(雁奴說)'이란 글이 있다. 
여기에 우리 조상의 기발한 기러기 잡는 법이 나온다. 
기러기는 보통 수십~수백 마리가 한 무리가 돼 물가에서 잠을 잔다. 
잘 때는 보초 기러기로 하여금 사방을 살펴 지키게 하고는 그 속에서 큰(대장) 기러기들이 잠을 잔다고
한다. 사람들이 틈을 엿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면 즉시 보초 기러기가 '비상'을 걸어 잠자던 
기러기들도 깨어 일어나 날아가기 때문에 그물로도 화살로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항아리와 촛불을 쓰는 방법이다. 
우선 날이 어두워진 뒤 항아리 속에 촛불을 넣고 불빛이 새지 않도록 감춰서 가지고 간다. 
살금살금 다가가 촛불을 조금만 들어 올리면 보초 기러기가 놀라 울고 큰 기러기들도 잠을 깬다. 
그때 바로 촛불을 다시 감춘다. 조금 뒤 기러기들이 다시 잠들면 또 전처럼 불을 들어 보초 기러기가 울도록 한다. 
이런 일이 서너 차례 되풀이되면 큰 기러기가 도리어 보초 기러기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혼을 내게 된다. 
안노설은 '그러면 사람들이 다시 촛불을 들더라도 보초 기러기가 쪼일까 두려워 울지 못하고 이때 사람이 덮쳐서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 버린다'고 적고 있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 같지만, 거짓말을 한 양치기 소년과 달리 보초 기러기는 사실 그대로 보고했는데도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 군은 과거에 정치적 이유나 국방 예산을 더 많이 타내려는 의도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도발 가능성을 부풀려 
얘기했다가 국민의 불신을 키운 적이 없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과 비슷했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군이 보초 기러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군의 이례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의 가장 위협적 운반 수단이 될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이 두드러진다. 
북한은 지난해 2~7월 한·미 감시망이 취약한 새벽이나 밤, 주말에 7차례에 걸쳐 스커드·노동 등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했다. 
7차례 중 4차례는 내륙 지역에서 기존 미사일 기지로부터 수십㎞씩 떨어진 곳으로 이동식 발사대를 몰래 이동시켰다. 
DMZ(비무장지대)에서 불과 20여㎞ 떨어진 우리 코앞에서 발사한 적도 있다. 모두 전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미 군 당국은 북 미사일 발사를 한 번도 사전에 탐지하지 못했다. 
대표적 비대칭 위협 중 하나인 북 특수부대 훈련 강화나 침투용 신무기 개발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북한군은 지난해 말 저공 침투용 AN-2기를 활용한 특수부대의 공수 낙하 훈련을 예년보다 20배나 늘렸다. 
군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은 집권 후 2015년을 '통일 대전 완성의 해'로 공언하며 국지 도발에서 전면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실전적 점검을 치밀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 대화와 협력이 제대로 되려면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국군이 보초 기러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약속이 빈말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