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잡초를 뽑으며 잡생각을 한다

바람아님 2015. 5. 12. 10:11

중앙일보 2015-5-12

 

양평은 1년 중 5월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담장에 붙은 넝쿨장미에는 아직도 봉오리만 매달려 있고, 찔레꽃도 다음 달은 되어야 필 게다. 그럼에도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 머지않아 그 꽃들이 만개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는 아닐까.

 

 

하루하루가 귀한 이 아름다운 5월. 아침에 눈뜨자마자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동네방네 온 천지가 꽃 천지다. 화려한 철쭉과 향기로운 라일락 그리고 탐스러운 작약. 그 틈에 지천으로 널린 이름 모를 꽃들. 얼핏 지저분해 보이는 그 꽃들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고운 선과 자태 그리고 은은한 색까지. 여간 예쁜 게 아니다. 풀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하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너희들도 자세히 보니 참 예쁘구나. 몰라줘서 미안하다. 잘 자라라’ 칭찬해주고 집에 돌아왔다.

 

엄을순</br>문화미래이프 대표

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

 

아침밥을 대충 먹고 챙 넓은 모자와 면장갑과 호미를 챙겨 앞마당으로 나갔다. 오늘은 잔디 정리하는 날. ‘뽑아도 뽑아도’ 비 한 번에 한 뼘씩 자라는 잡초. 방심하면 무릎까지 뒤덮여 잔디밭이 토끼풀밭이 된다.

생명력도 강해서 호미로 뿌리까지 쏘옥 파내어 말려버려야 된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허리도 펼 겸 매실차 한 잔을 가지러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 시멘트 바닥에 뿌리까지 뽑혀 시체같이 나동그라져 있는 잡초들. 아침에 집 앞에서 봤던 바로 걔네들 친구였다. 선도 곱고 색도 곱고 돌봐주는 이 없어도 쑥쑥 자라는 강인함이 더 아름답다 칭찬했던 그 잡초들. 그건 남의 땅에 자랄 때 얘기였다. 내 잔디에 그들을 허용할 수는 없었던 게다.

 

‘과도한 욕심을 금하라’는 의미로 툭하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해놓고선, 어제는 겸손하게 솔잎 먹고 있는 송충이들을 젓가락으로 죄다 잡아 죽였다. 남의 솔잎을 먹으라는 얘기였던 게다. 내 소나무 갉아먹는 송충이는 용서할 수 없다.

 

아이들은 어릴 때 맘껏 뛰어놀게 키워야 한다면서도 자기 아이만은 행여 뒤처질세라 이 학원 저 학원 뺑뺑이 돌리는 사람들. 영어 한 문장 더 읽을 줄 아는 것보다 친구 마음을 헤아리고 읽을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친구들이랑 노는 자기 아이는 느긋하게 봐주지 못하는 사람들.

 

‘내 건 안 되고 남의 건 되고, 나는 해도 되고 너는 하면 안 되고’.

세상의 모든 선과 악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들이대는 인간들의 이중 잣대. 이런저런 잡생각에 속절없이 또 봄날만 간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