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탑독(Top Dog)'

바람아님 2015. 11. 29. 07:44

(출처-조선일보 2015.11.28 김민철 논설위원)

작년 겨울 경남 양산 불광산에서 등산객 세 명이 폭설에 고립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밤이 깊었고 허벅지까지 눈이 쌓여 소방서와 경찰은 수색을 포기한 상태였다. 

밤 10시쯤 부산소방안전본부 인명 구조견 '세중'이가 투입됐다. 

세중이는 한 시간쯤 산을 오르다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흥분해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를 포착했다는 신호였다. 

인명 구조견을 다루는 '핸들러' 김용덕 소방위가 세중이를 따라 뛰었다. 

세 조난자가 정상 아래에 돗자리를 덮고 끌어안은 채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지난 5년 세중이가 구해낸 사람은 스무 명이 넘는다. 올해에만 68차례 출동해 일곱 명을 구조하고 시신 세 구를 발견했다. 

그제 국민안전처가 연 제5회 전국 인명 구조견 경진대회에서 독일 셰퍼드 수컷 세중이가 최우수 구조견 '탑독(Top Dog)'으로 

뽑혔다. 세중이는 전국에서 모인 스물다섯 마리와 산악 수색, 장애물 실력을 겨뤄 100점 만점에 93점을 받았다. 

이날 성적에 지난 한 해 활약한 구조 점수를 합쳐 우승했다.

만물상 칼럼 일러스트

▶김 소방위의 별명은 '세중 아빠'다. 세중이가 2011년 구조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세중이 눈이나 몸짓만 봐도 목이 마른지, 피곤한지, 토라졌는지 안다. 세중이도 처음부터 우등생은 아니었다. 

셰퍼드치고는 고집이 센 편이어서 구조견 테스트에서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여느 구조견이 세 살이면 합격하는데 다섯 살에야 통과했다. 대신 현장에 투입되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모두 280차례 출동해 20여 명을 구했다. 전국 대회 우승도 이번이 네 번째다.


▶구조견은 사람보다 마흔 배 넘게 뛰어난 청각과 1만배 이상 발달한 후각을 갖고 있다. 

한 마리가 산악에서 구조대원 30~50명 역할을 해낸다. 

대원들은 밤에는 거의 전적으로 구조견의 후각과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중이는 이달까지 활동하고 은퇴한다. 세중이는 아홉 살이라 사람으로 치면 60대다. 

은퇴하면 일반 가정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편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김용덕 소방위는 "세중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중심에서 많은 사람을 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며  

"이름값을 잘 해냈다"고 말했다. 사람과 개가 교감할 때면 양쪽 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솟는다고 한다. 

아기를 낳거나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특히 많이 나오는 '사랑 호르몬'이다. 

사람과 개가 사랑스러운 감정을 나누는 본질은 부모와 자식 사이 감정과 같다는 얘기다. 

세중이는 현장을 떠나지만 또 다른 구조견이 김 소방위와 짝을 이뤄 산악을 누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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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

탑독 세중이와 핸들러인 김용덕 소방위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공정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