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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통영 가는 길

바람아님 2017. 10. 4. 08:33


중앙일보 2017.10.03. 01:02


박경리 묘소 참배하러 간 통영 길
전쟁 상흔 안고 산 문인 많은 남도
이청준·이병주·박경리 작품 속
문학의 바다는 전쟁 회한 씻는데
핵이 키운 남북 원한 언제 풀릴까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대 교수
통영 가는 길은 멀었다. 섬진강을 남하해 순천에 닿았다. 강 하구를 건너 하동에 머물렀다가 사천으로 옮겼다. 매년 해 오던 박경리 선생 묘소 참배가 올해는 이리 늦었다. 늦은 김에 한반도 서남부를 둘러 왔는데 강마을과 길섶엔 가을이 영글었다.

차창 풍경은 공포의 언어들로 자주 일그러졌다. 수소폭탄, 핵잠수함, 죽음의 백조 같은 쇠붙이 단어가 가을 강, 벼이삭, 감나무 같은 계절 언어를 산산조각냈다. 강마을은 정취를 주지 못했고, 이른 어둠이 하구 노을을 빨아들였다. 추심(秋心)에 전쟁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전쟁을 겪은 세대(世代)가 손자 세대를 낳아도 증오의 기억이 선혈처럼 지피는 우리의 현실을 기어이 인정해야 하는가. 문중(門中)의 원한은 삼대가 지나면 소멸되거늘, 재발을 거듭하는 민족의 원한은 달이 차고 이울수록 점멸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외교책략가와 국제전문가들이 기발한 지략을 짜내도 서민들의 얼굴에 쏟아지는 공포의 언어를 걷어내지 못한다. ‘한·미 동맹을 깨더라도 한반도 전쟁은 안 된다’는 문정인 특보의 공언(公言)은 전쟁을 억제하는 말인지, 전쟁을 부추기는 말인지 알쏭달쏭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말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고. 전쟁은 모든 생명체의 발아와 생장의 스토리를 짓밟는다. 전의(戰意)의 진정제, 전운(戰雲)의 항생제가 그 사소한 얘기들에 들어 있음에도 말이다. 남도(南道)엔 전쟁 상흔을 안고 살아온 문인이 많다. 소설가 정지아의 부모는 빨치산이다. ‘빨치산의 딸’은 남부군 정치위원 출신 노모를 모시고 구례에 산다. 남로당 도당위원장 아버지가 묻힌 계곡에서 지척이다. 상복이 터진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은 ‘물에 잠긴 아버지’ 얘기를 썼다. 남한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장흥군 유치면 일대를 장악했던 유격대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는데 6·25 때 행방불명됐다. 후손이 평생 감당한 사상적 혐의의 현실적 고통은 장흥댐 물에 잠겼다. 역시 장흥 출신 작가 이청준, 구순 노모를 모시며 부친이 남긴 짐을 글로 다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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