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8.17
가수 남궁옥분의 인터뷰를 기다리는 내내 ‘꿈을 먹는 젊은 이’를 흥얼거렸다.
딱 꿈을 먹고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노래였다.
뭘 해도 힘들 때였으니 청아한 목소리와 가사는 ‘청춘의 위로’로 다가왔었다.
수십 년간 잊고 있었던 그 노래가 그 시절의 기억으로 빠져들게 했다.
스튜디오 떠나갈 듯 높은 볼륨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데 그녀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만큼이나 통통 튀는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를 먼저 한 후에 사진을 찍자고 요구했다.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첫 마디부터 그녀의 고해성사였다.
“포커가수로 순수하게 시작했었어요. 10대 가수니 뭐니 하며 내가 아닌 덧씌운 모습으로 살아왔어요. 내 정신이 가고 싶은 곳과 내 몸이 있는 곳이 일치하지 않았죠.”
당시 수많은 젊은이에게 위로를 준 가수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했다.
도대체 왜일까? 또박또박한 그녀의 고백에 어느새 몰입되었다.
“노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점점 사라져갔어요.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어요. 정말 책임감 없었죠. 실력없이 목적지가 돈이었던 시절이었죠. 낯뜨거웠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이 필요 없었다. 그녀의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그냥 기타 치며 노래를 시작했어요. 나중에 사상누각이란 걸 알았어요. 학생들을 가르친 적 있어요. 내 스스로 배운 게 없이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애들에게는 모독이었죠.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난 사실, 예전 그녀의 노래가 좋았었다. 그런데 그녀는 예전의 자신이 부끄러웠노라 스스로 고백을 하고 있는 게다.
“사실 TV에서 한창 ‘공기 반 소리 반’ 그럴 때 뭔 소리인가 했습니다. 3년 전부터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나이 어린 선생에게 배우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죠. 대중들에게 부끄러운 게 더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타이거우즈도 레슨받잖아요. 예술이든 인생이든 완성은 없는 거 같아요.”
어느 순간 그녀의 고백을 하나하나 받아 적고 있었다. 그녀의 고백이 마치 내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던 탓이다.
이제야 노래할 때가 된 것 같아 앨범을 내었다고 했다. 그녀가 내민 앨범의 뒷면에 ‘광복 70주년’이란 글귀가 적혔다. 이제야 때가 되어 낸 앨범이 ‘광복 70주년’을 위한 것이란 의미다.
그녀의 첫 고백을 되짚어 봤다.
내 정신이 가고 싶은 곳과 내 몸이 있는 곳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삶의 고백, 그것으로 되짚어 보자면 정신과 몸이 일치하는 곳이 이 앨범이란 의미로 여겨졌다.
곡 제목들이 '금강산' '아리랑' '봉선화'(일본군 위안부를 위한노래)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예사롭지 않은 제목들, 이 앨범의 주제가 뭐냐고 물어봤다.
‘평화와 힐링’이라고 답했다.
그녀와 함께해온 기타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평화와 힐링’의 표정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 나이 때의 여느 여인들, 웬만해선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지 않는다.
바로 주름살 때문이다.
그녀는 주름살 하나하나도 몇십 년 걸려 만들어진 것이니 포토샵으로 지울 필요 없다고 했다. 과거의 시행착오가 다시 가수로 서있게 한 역사이듯, 그 주름살 하나도 오늘의 그녀를 보여주는 삶의 역사란 얘기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며 당신의 그림을 선물로 내어놓았다. 스튜디오 빈 벽에 두었다.
오가며 그림을 볼 때마다 그녀의 고백을 곱씹는다.
그것으로 내게 물어본다. 덧씌운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정신과 몸은 같은 곳에 있는가? 그리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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