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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응원할 팀이 없다'

바람아님 2015. 12. 27. 09:57

(출처-조선일보 2015.12.25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與黨 진실하지 않은 '진실한 팀'
野黨 순수하지 않은 '순수한 팀'
정당 정치 沒落은 '이기나 지나 팬'의 自業自得

프로 구단(球團)은 관중과 함께 간다. 관중이 떠나면 구단은 무너진다. 

각 팀 관중의 주력부대는 구단 연고지(緣故地)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광(狂) 팬이다. 

이기나 지나 고향 팀을 응원한다. 

홈경기는 주력부대로도 스탠드가 가득하나, 어웨이(away) 경기 관중석을 주력부대로만 메울 수는 없다. 

팀 성적·경기 매너·스타 선수의 매력에 끌려 경기장을 찾는 관중을 확보해야 한다. 

두 관중의 구성 비율은 팀 활력(活力)에도 영향을 준다. '이기나 지나 팬'에게만 기대는 팀은 까닥하면 나태해진다.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관중이 때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채찍 노릇을 한다.

관중이 응원할 팀을 선택하는 권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응원할 팀을 고를 수 없으면 그 스포츠 자체를 외면하게 된다. 

프로 구단 숫자가 야구·남자 농구 각 10개 팀, 축구 12개 팀, 남자 배구 7개 팀, 여자 농구·배구 각 6개 팀인 것도 

다 그럴 이유가 있다.

프로 스포츠는 선수들을 위한 세계가 아니다. 관중을 지루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프로 야구의 '경기 신속 진행(speed up)' 규정이 바로 그런 장치다. 

한번 타석(打席)에 들어선 타자는 헛스윙으로 자세가 허물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곤 반드시 한 발은 타석을 딛고 있어야 한다. 

위반 시는 벌금 20만원이다. 투수는 베이스에 주자(走者)가 없는 상황에선 12초 이내에 다음 볼을 던져야 한다. 

공격과 수비가 교체될 땐 공격 팀은 첫 타자를 2분 이내에 타석에 들여보내야 한다. 

프로 스포츠는 관중을 붙들기 위해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것이 프로의 정도(正道)다.

정당은 프로 정치인 집단이다. 이긴 팀은 우승 트로피가 아니라 국정(國政) 운영권을 가져간다. 

정당과 국민과의 관계는 구단과 팬의 관계에 비길 바가 아니다. 

패배한 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승리를 포기한 구단은 해체돼야 마땅하다. 

국민에게 응원할 팀을 선택할 권리를 앗아가는 정치는 독과점(獨寡占) 정치다. 

여야 어느 쪽에도 응원을 보낼 수 없는 국민이 벌써 스탠드를 뜨고 있다. 

관중석을 여태 지키고 있는 관중은 '이기나 지나 팬'밖에 없다. 

특정 구단이 아니라 정치 전체가 무너질 날이 멀지 않다.

정치나 스포츠를 경쟁으로만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잘못이다. 

정치와 스포츠는 경쟁과 협력의 두 기둥 위에 얹혀 있다. 

상대 골대에 볼을 차 넣어야 한다는 점에선 경쟁의 게임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먼저 팀 내부에서 볼이 매끄럽게 패스 돼야 한다는 점에선 협력의 게임이다. 

협력의 질서가 무너지면 경쟁의 시스템도 무너진다. 한국 정치가 바로 그 지점에 와 있다.

'오대영(5대0) 감독'이란 오명(汚名)을 견디며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 대열에 올려세운 히딩크의 감독 부임 첫 구호가 

'묻지 마'였다. 선수들의 '학교를 묻지 말고' '선후배를 따지지 말고' '나이를 비교하지 마라'였다. 

볼은 흘러야 할 곳으로, 슛할 자리에 가 있는 선수에게 보내는 것이지 선배에게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축구의 상식이다. 감독의 선수 용병(用兵)도 이 상식을 따랐다. 

히딩크는 '진실한 선수'를 찾은 적이 없다. 4강 기적의 씨앗은 상식의 회복(回復)이었다.

현 정부의 용병술은 히딩크의 반대다. 

스탠드 관중은 왜 저 장관이 기용(起用)됐는지, 왜 저 비서관들은 아직도 교체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른다. 

선수 기용 기준이 타율·타점·출루율·방어율 가운데 어느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다음 총선에 출전시킬 후보 선발을 놓고 여당 내에선 매일처럼 '진실한 선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에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집권당의 '진실한 팀'이 출전할 모양이다.

야당 꼬락서니를 보면 여당이 '진실한 팀'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만하다고 여유를 부릴 법하다. 

며칠 걸러 한 번씩 소속 의원 탈당(脫黨)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타격 코치·투수 코치마저 달아날 생각으로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그런데도 감독은 '작아도 단단한 팀'으로 총선에 나선다고 한다. 

여당의 '진실한 팀'에 '순수한 친노(親盧) 팀'으로 맞서는 전략이다. 

야당 지지율이 여당의 반 토막인데 그 반 토막을 다시 반 토막 낸다는 말이다. 

패배를 불사(不辭)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말이다. 

전쟁에 져도 좋다는 장군(將軍)은 지휘봉을 놓아야 한다.


이런 두 팀이 모인 국회가 선거구 획정 문제조차 법정 시한 안에 처리하지 못하는 위법(違法) 사태를 빚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기네 밥그릇도 이 지경인데 국민 밥그릇은 오죽했겠는가. 

프로야구의 '스피드 업' 규정을 적용하면 두 팀 다 퇴장감이다. 

해는 저무는데 진실하지 않은 '진실한 팀'과 순수하지 않은 '순수한 팀' 사이에 낀 국민은 응원할 팀이 없다. 

'이기나 지나 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쳐도 보통 가혹한 처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