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아스팔트에 세운 국회

바람아님 2017. 3. 6. 16:14

(조선일보 2017.03.06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프랑스혁명 때 의회 장악한 민중 

극단적인 과격파만 득세하고 온건파는 무차별 숙청당해 

非민주적 열정은 참혹한 결과 낳아… 

"혁명"과 "계엄령" 외치는 한국, 거리보다 제도에서 해결책 찾아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은 갈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을 이끄는 변호사는 국회를 '야쿠자' 같다고 비난하고, 헌법재판소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하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는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의 언사도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워낙 많은 비판에 몰려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이런 수준의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혁명이 일어나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프랑스혁명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기를 살펴보자.


민중 세력에 불을 지르는 인물은 대개 극단적 주장을 펴는 의원과 저널리스트다. 장-폴 마라가 대표적이다. 

혁명의회에서 그는 "자유는 폭력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 독재를 분쇄하기 위해 일시적인 독재를 조직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에 격앙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이에 저항하는 온건파 의원들, 보수적 시민들과의 

대립이 격화됐다. 다름 아닌 마라 자신이 왕당파 여인에게 암살당하자 분위기는 더 끓어올랐다.


이후의 혁명 진행 과정을 보면 급진 의원들이 불러들인 민중 세력이 오히려 의회를 포위하고 압박을 가하게 된다. 

"폭군에게 전쟁을! 귀족에게 전쟁을! 매점자에게 전쟁을!" 하는 구호를 외치며 군중이 의회를 둘러싸고 더 나아가서 

아예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의원들은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의를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주장을 할수록 

인기를 얻고 득세하는 법이다. 이때 의회가 의결한 안건 중에는 혁명에 대해 불순한 태도를 보이는 혐의자의 체포, 또 이에 

불응하는 불순한 혁명위원회 의원들의 숙청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더 나아가 혁명 활동을 추진하는 구민회(區民會)에 

참석하는 시민에게 일당을 지불하자는 제안도 통과되었다. 민중은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의회가 민중의 힘에 굴복해 민중의 

의사를 관철해 나갔다.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끔찍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더민주 대선주자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석자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사진 아래)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오른쪽)와 윤상현 의원이 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 참석,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극단적인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이제는 정말로 누가 더 과격한 주장을 하느냐 하는 경쟁과 같았다. 

에베르는 "쇠가 식기 전에 잘 다듬어서 반역자들을 단두대에서 목 벨 것"을 혁명재판소에 권고했고 "성스러운 기요틴의 

덕성을 기리고 모든 관용을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파리의 교도소는 수인(囚人)으로 넘쳐났고 사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파견 의원들이 지방 각지로 가서 거칠 것 없이 권력을 행사했다. 낭트 지역에 파견된 카리에 의원은 혐의만으로도 

수많은 자를 재판 없이 두 사람씩 묶어 루아르강에 던져 넣어 익사시켰고, 혁명에 미온적이었던 지방 대도시 리옹에선 

"부유층 주거지를 전부 파괴하라"는 명령이 집행됐다. 이 즈음에 이르면 반혁명 분자, 왕당파만 죽은 게 아니었다. 

혁명 세력 가운데 온건파가 극단파에 처형당하고 극단파는 초(超)극단파에 처형당했다. 

자신이 혁명의 '주체'라 생각한 사람이 어느 순간 혁명의 '대상'이 되어 처형당하는 것, 한번 시작된 불이 세상을 다 태울 듯 

퍼져가는 것, 정제되지 않은 열정은 이런 가공할 결과를 낳는다.


프랑스혁명은 구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고 역사의 진보를 이루었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혁명은 문제를 해결한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민주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며 너무나 비민주적인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진보의 방식 자체도 합법적이고 민주적이어야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 상황은 아스팔트 위에서 피 흘리며 충돌할 태세다. 

촛불 시위는 질서 정연하고 민주적인 자세를 견지했으나 이제 분위기가 바뀌었다. 

탄핵이 기각되었을 때 '노예처럼' 승복하면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반(反)민주적인 주장도 들려온다. 

소위 태극기 세력 또한 마찬가지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어처구니없는 말, 지난 시대 악독한 독재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계엄령이 답"이라는 

주장을 듣노라면 소름이 돋는다.


이번 국정 혼란 사태를 해결하고 더 탄탄한 민주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길은 법에 의한 문제 해결의 선례를 세우는 것이다. 

격렬하게 의견 대립이 벌어졌지만 결국 모두 동의하는 해결책을 찾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혁명과 계엄령을 찾는 것은 100년 전, 200년 전 먼 과거로 역사적 후퇴를 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의회를 떠나 아스팔트로 달려가는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