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03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월호가 침몰 1075일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 미수습 희생자의 유해를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침몰 원인을 샅샅이 밝혀 더 이상의 불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국가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쉬운 것은 국가 개조라는 말에 걸맞도록 국가 운영 체제를 중앙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뜯어고쳤어야 했다.
인명 구조와 같이 시급을 다투는 업무는 현장에 근접한 행정기관에 맡겨야 한다.
기초지방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공무원과 주민의 힘을 모아 일차적인 구조작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기초지방정부가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광역지방정부가 개입하고, 그래도 수습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중앙정부가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현장의 지방정부를 지원해야지 현장을 장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2009년 미국에서 강물에 불시착한 비행기로부터 탑승자 155명을 전원 구조한 허드슨강의 기적도 철저히 지방분권화된
재난 구조 체제 때문에 가능했다.
세월호 사건에서 인명 구조의 실패는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 체제가 빚어낸 재앙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해양경찰이 인명 구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중앙정부 소속인 해양경찰은
현장에 도착한 후 인명 구조보다는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급했다.
현장 사진을 찍어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느라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2009년 1월 탑승객 전원이 생존한 허드슨강 사고 당시의 재구성. /조선일보 DB
당시 진도 어민들은 사건 소식을 접하자 인명 구조를 위해 바로 사고 현장에 달려갔다. 놀라운 시민정신이다.
탈출한 승객 몇 명을 구조하고 나머지 승객들의 탈출을 기다렸다.
"사람이 나와야 뭐 건질 거 아니어요." "몇 백 명 실었다 한디 얼릉 사람이 나와야 된디 뭐 사람이 안 나와요."
당시 교신했던 진도 어민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해양경찰은 선장에게 승객을 탈출시키라는 지시조차 하지 못했다.
해양경찰은 승객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을 도와주는 꼴이 됐다.
만약 진도군수나 전라남도지사에게 인명 구조 책임과 현장을 지휘할 권한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파악한 후 곧바로 선장에게 승객을 탈출시키라고 명령할 수 있었을 것이고, 소속 직원과 출동한
어민들이 힘을 합해 탈출한 승객을 구조했을 것이다.
전남지사는 사고 당일 소방헬기로 현장에 갔지만 상황을 지켜보는 것 이상은 하기 어려웠다.
사건 현장을 지휘할 권한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 구조 체계는 개선은커녕 더 나빠졌다.
지방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자부 소속 해양경찰을 해체하고 국무총리 소속 국민안전처를 설치해 현장과 더 멀어졌다.
그 후 발생한 메르스 사태나 경주 지진 사고 등 계속되는 재난에 중앙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국민의 불안은 커졌다.
걷잡을 수 없는 국가 위기를 예고하는 전조들이다.
대한민국호가 세월호처럼 침몰하는 비극을 피하려면 더 늦기 전에
중앙정부는 국방과 외교, 통상과 같이 전국적인 큰 문제에만 집중하고
그 밖의 생활 문제는 현장의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국정 운영 체제를 과감하게 지방분권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론&정치] 대선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0) | 2017.04.04 |
---|---|
[이동식의小窓多明] 나루터를 묻다 (0) | 2017.04.03 |
[발언대] 중국 첨단기술서 배울 점 (0) | 2017.04.02 |
[씨줄날줄] 김영옥 대령과 혼다 의원/최광숙 논설위원 (0) | 2017.04.01 |
[분수대] 남성, 여성 그리고 무성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