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배운 목사님은 사양… 미국 대중은 '서커스 예배'에 열광했다

(조선일보 2017.04.29 양지호 기자)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유강은 옮김

교유서가｜680쪽｜3만5000원

309.142-ㅎ589/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과 취임 100일을 앞두고 인터뷰하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방위비 분담금 10억달러(약 1조원)를 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면서 미국 대통령에 누가 선출되느냐는 

국제적 관심사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를 뽑아 혈맹인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가.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가 1963년 펴낸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그런 미국인의 정신상태를 탐구하는 책이다.

요즘 말로 '판도라의 상자'다. 

우연히 연인 스마트폰을 보다가 문자메시지와 SNS에서 원치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한다.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추적하는 이 책이 그렇다.

미국인은 어떻게 사고하는가. 저자는 먼저 그 특징으로 미국 종교계의 '부흥주의'와 '원시주의' 전통을 지적한다. 

1743년 3월 미국 코네티컷 뉴런던에서 목사들의 저서와 설교집이 불길에 휩싸였다. 

지성적인 교계가 신의 뜻에서 멀어졌다고 주장한 제임스 대븐포트 같은 부흥주의 전도사(evangelist)가 이를 주도했다. 

비슷한 화형식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잇따랐다. 이들은 "설교할 자격은 성령에 의해 주어진다. 

말뿐인 지식이나 교양이 필요한 게 아니다. 

설교는 성령께 받은 감동으로 말이 입을 뚫고 나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을 떠올리게 하는 분서(焚書)가 18세기 미국에서 벌어졌다. 

이들은 학습한 이성보다도 신이 주신 직관을 신뢰했다는 점에서 원시주의적이다.

 

전도사 빌리 선데이(큰 사진)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단상에 뛰어 올라가고 의자를 부수는 퍼포먼스로 인기몰이를 했다.

오른쪽 사진은 반공주의로‘매카시즘’열풍을 일으킨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두 사람은 반지성주의라는 키워드로 함께 묶인다. /핀터레스트·교유서가

시곗바늘을 조금 후대로 돌린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그들은 전도사 빌리 선데이에 열광했다. 

그는 설교 중에 의자를 부수고,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삿대질을 하며 크게 꾸짖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서커스 단원을 고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벽돌공의 아들, 무명 야구선수 출신의 그에게 대중은 홀딱 반했다. 

"부흥회에서 1명당 2달러밖에 못 벌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돈을 밝혔고, 목사 안수를 정식으로는 받지 못할 정도의 

지식수준이었지만, 대중은 그를 사랑했다. 

미국인에게 지성은 그리 큰 매력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교회가 아니라 미 전역을 도는 개척가적 면모와 사업가 정신을 발휘하며 평생 환대받았다.

이는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련되었지만 타락한' 유럽 문명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평등주의적으로 세워졌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단순 연상을 해보자. 

지식인, 교육, 특권, 귀족, 유럽식 귀족정치. 대중, 무지, 평등, 미국식 민주주의. 

지성은 타락한 유럽의 것이었고 평등주의는 엘리트가 권력을 잡는 것을 견제했다. 

지식인에 대한 비합리적일 정도의 경멸과 반감을 가지는 반지성주의야말로 미국 문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 지성 사회가 한 몸이 되어 지지했던 아들라이 스티븐슨은 군인 출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대선에서 두 번이나 물을 먹었다. 

비슷한 시기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다. 

저자는 "매카시즘은 반공산주의 운동이 아니라 반지성주의 운동"이라고 썼다. 

책이 나온 이후 반세기 동안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거듭 고개를 들었다. 

미국 대중은 엘리트 앨 고어 대신 친근한 조지 W 부시를 선택했고, 원시주의, 지성에 대한 경멸, 

성공 일변도의 사업가 정신을 체현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반지성주의는 미국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국민의 평등을 전제하는 민주국가, 신 앞에 평등을 전제하는 종교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을 읽는 책이면서,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퓰리처 논픽션 부문 수상작(1964년)이자, 고전(古典)으로 꼽히면서도 트럼프가 부상한 뒤에야 번역된 데는 

책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 미국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미국 18세기 종교 부흥주의와 각성 운동에 대한 내용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생소한 부분이다. 

역대 주요 미국 대통령 이름과 주요 정책은 알아야 이해가 쉽다는 부분도 문턱을 높인다. 

반지성주의를 1952년 '계란머리(egghead·그럴듯한 지적 허세를 부리는 대학교수 등을 비꼬는 속어) 논쟁' 같은 

미국적 사례를 통해 느슨하게 정의하는 대목도 아쉽다.

[책 속으로]  반지성주의는 세습특권에 대한 저항

(중앙일보 2017.01.07 김환영 기자 사진김환영 기자) 극단적 청교도주의에 대한 반작용 기독교 미국화 과정서 탄생·진화 ‘신 앞의 평등=세속의 평등’ 확산 독립·노예해방·여권운동 이끌어 반지성주의/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세종서적/ 316쪽,  1만5000원 309.113-ㅁ536ㅂ/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서정아 옮김, 21세기북스/ 396쪽,  1만8000원 321.81-ㅁ992ㅇ/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균형은 항상 깨진다.  균형이 깨져야 발전이 가능하다. 불균형이 ‘정상화’된 후에는 균형의 복원이 시작된다. 『반지성주의』는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를 둘러싼 균형·불균형을 다룬다. 분석의 무대는 미국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12일 출간 예정)의 주제는 평등·불평등이다. 『반지성주의』의 저자 모리모토 안리에게 ‘반지성주의’는 반드시 나쁜 게 아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기독교의 미국화’ 과정에서 탄생하고 진화했다.  원래는 목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하버드·예일·프린스턴이 상징하는 청교도주의의 극단적인 지성주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지성주의가 탄생했다.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빌리 선데이 목사(왼쪽). 단상에서 뛰고 의자를 휘휘 돌리며 설교를 했다.  오른쪽은 그런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우드로 윌슨 미국 28대 대통령. [사진 세종서적] 반지성주의는 18, 19세기에 이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신앙부흥운동(revivalism)을 통해 분출됐다.  파동처럼 밀려 왔다. 지성주의가 다시 득세하면 새 신앙부흥운동이 시작됐다.  신앙부흥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울부짖고 실신하고 경련을 일으키거나 황홀경에 빠졌다.  ‘무식한’ 사람도 회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부흥회 지도자들 또한 상당수 ‘무식’했다. 반지성주의를 뒷받침하는 ‘신(神) 앞에 평등’은 세속의 평등주의로 쉽게 연결됐다.  저자는 신앙부흥운동이 미국 독립운동·노예해방운동·여권신장운동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특유의 현상’인 반지성주의를 저자는 이렇게 이해한다.  반지성주의는 지성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지성이 권위와 유착되고 지성이 세습특권계급의 독점 소유물이 되는 데 대한 반대다. 지성주의·반지성주의는 공존한다. 미국은 반지성주의도 세계로 전파했다.  세계화 또한 미국의 주요 수출품이다. 세계화는 평등과 불평등 사이의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손꼽히는 불평등 전문가인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CUNY) 교수가 쓴  『우리는 왜 불평등해졌는가』의 제목은 책 내용 중 일부만 반영한다.  1988~2011년의 세계화 시대에 국가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감소했다. 산업혁명(1760~1840) 이후 처음이다. ‘세계는 왜 평등해졌는가’라는 제목을 붙일 만하다.  반면 부자 나라들의 국내 불평등은 증가했다. 특히 선진국 중하위 계층의 소득이 정체됐다.  불평등 심화에 대해 밀라노비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기초자본(자본 소유와 교육 수준)의 평등화’다. 불평등의 이해를 위해 밀라노비치 교수는 ‘쿠즈네츠 파동’의 개념을 제안한다.  불평등이 증가했다가 떨어진 후 다시 증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사이클을 그리며 반복되는 과정이다.  현재는 지성주의·반지성주의가 공존하듯 글로벌 평등의 증가와 국내 불평등의 증가가 공존하고 있다. 국내 불평등의 심화로 금권주의와 포퓰리즘이 부상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대 세력이다.  부자도 빈자도 아닌 중산층이 사라지면 이는 곧 민주주의 기반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편 민족주의적인 포퓰리즘은 반지성주의 색채가 짙다. 지성·반지성과 평등·불평등은 각기 역사 속에서 순환한다.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 심화의 결과로 반지성주의와 반세계화주의가 ‘뉴노멀’이 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S BOX] 트럼프가 클린턴 꺾은 건 미국의 반지성주의 때문 정치와 종교는 병행 발전한다. 건국기 미국은 귀족 지식인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종교 상황도 비슷했다.  한때 하버드·예일 출신이 아니면 교회에서 설교할 수 없다는 목사연합회의 규정이 있었다.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67~1845, 1829~1837 재임) 시대부터 보통 사람들의 정치 시대가 열렸다.  신앙부흥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종교지도자가 될 길을 텄다.  미국 대선의 향방은 상대가 있는 싸움인 만큼 결과가 그때 그때 다르다.  『반지성주의』의 저자 는 이렇게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영리하고 똑똑한 지적 엘리트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똑똑한 힐러리 클린턴이 ‘막말’ 트럼프를 이기지 못한 배경에는 반지성주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