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2018.02.10. 04:29
남극 셰틀랜드 군도 킹조지섬 바톤반도에 자리한 세종과학기지 남동쪽 해안가 자갈길을 1시간여 걷다 보면 펭귄이 그려진 자그마한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ASPA No 171’ 일명, ‘펭귄마을’로 불리우는 ‘나브레스키 포인트(Narebski Point)’를 알리는 입 간판이다. ASPA는 ‘남극특별보호구역’의 약자다.
펭귄마을은 세종기지에서 남동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 1㎢ 면적의 해안 언덕이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나브레스키 포인트에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을 비롯해 윌슨바다제비, 남극도둑갈매기 등 모두 14종의 조류와 남극좀새풀을 비롯한 식물 88종이 분포해, 생태적·과학적 보호 가치가 높은 곳으로 꼽힌다.
때문에 과거 수많은 연구진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생태계 교란빈도가 높아져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우리나라는 이곳을 남극특별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해 2009년 제32차 남극조약당사국회의에서 71번째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관리하는 최초의 국외 자연보호구역이기도 하다.
ASPA 입간판을 지나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펭귄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가 언덕에서 내려온 수많은 펭귄들이 줄지어 바다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눈 위에 하얀 삼각형이 있고 주황색 부리가 특징인 젠투펭귄이다.
새끼에게 줄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행렬이다. 이미 먹이를 구한 어미 펭귄은 뒤뚱거리며 급경사 설원을 걸어 올라간다. 등산화를 제대로 갖춰 신은 연구대원들도 쉽지 않은 경사지만 새끼에게 줄 먹이를 물어온 어미에겐 거칠 것이 없다. 경사지를 오르자 한 무리의 펭귄떼가 모여있다. 회색빛 솜털로 뒤덮인 새끼 젠투펭귄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10여 마리의 새끼들이 모여있다. 이른바 ‘펭귄 유치원’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다.
젠투 펭귄은 먹이활동을 하는 동안 새끼들을 한 곳에 모아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방어하면서 돌본다. 일종의 ‘공동 육아’를 하는 셈이다. 어미가 부지런히 새끼를 먹여 2~3주가 되면 혼자 돌아다닐 정도가 되고 4~5주면 유치원을 만들 정도로 커진다고 한다. 낯선 기자에게도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먼저 가까이 접근할 정도로 성격이 온순하다.
암컷과 수컷이 교대로 바다에 나가 뱃속에 먹이를 담아온다. 새끼는 어미의 부리를 쪼아 먹이를 토하게 해 받아먹는다. 주 먹이는 남극크릴이다. 먹이가 부족했는지 어미를 따라 다니며 부리를 쪼는 새끼 펭귄들의 모습이 기자의 시선을 잡아 끈다.
발길을 돌려 지의류가 깔려 있는 널찍한 들판으로 향하니 젠투펭귄이 알을 품던 둥지가 보인다. 젠투펭귄의 분변과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온 흔적들이 즐비하다. 펭귄마을로 안내한 홍순규 제31차 세종기지 월동대장은 “아마 먹이 활동을 위해 해안가 근처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며 “곧 새끼들의 털갈이 시기가 지나면 어미만큼 커져 독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눈을 들어 반대편 해안가를 바라보니 절벽 끝쪽으로 수 많은 펭귄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 있다. 가까이 접근해 살펴보니 마치 턱끈이 있는 모자를 쓴 듯한 펭귄이다. ‘턱끈 펭귄’으로 불리는 종으로 젠투펭귄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성격은 더 사납고 시끄럽다.
젠투펭귄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12월에 태어난 새끼 수십마리가 유치원을 만들어 모여있다. 유치원 주변에는 어미 펭귄이 보초를 서듯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기자가 가까이 접근하자 날개를 들어 위협하며 큰소리를 낸다.
펭귄마을엔 젠투펭귄 2000여쌍, 턱끈 펭귄 3000여쌍이 번식하고 있다. 극지연구소에서는 2010년 이후 이들 펭귄의 번식쌍수, 번식성공률, 취식행동 등의 기초 연구를 진행해 왔다.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시스템을 도입해 번식기 동안 알과 새끼의 생존율을 조사하고 있으며 바이오로깅 기법을 도입해 이들 펭귄의 취식장소 이용패턴도 분석하고 있다. 바이오로깅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를 동물의 몸에 부착해 다양한 행동정보를 기록하는 기법이다.
우리 연구진은 2015년 극지연구소 연구결과 젠투펭귄은 주로 10m 미만의 잠수를 가장 많이 하고 30~35m 깊이에서 잠수효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2016년에는 턱끈펭귄이 번식단계에 따라 취식지 영역과 잠수 깊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지난해에는 비디오카메라에 기록된 영상과 음성데이터를 분석해 젠투펭귄이 먼 바다에서 짧고 높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 신호가 젠투펭귄이 무리 짓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사상 최초로 밝혀냈다. 이러한 신호전달은 주변 다른 개체들과 통신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홍순규 대장은 “장기적인 모니터링 자료가 축적되면 환경변화와 인간활동이 보호구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효율적인 보호구역 관리 방안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남극특별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 당사국인 만큼 의무적으로 5년마다 남극특별보호구역 관리 계획서를 남국조약협의당사국에 제출해야 한다. 또 해당 지역에 대한 생태계 모니터링, 방문자 교육 및 출입허가증 발급 등의 활동을 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식물 반입도 금지되며 폐기물은 반드시 외부로 반출해야 한다.
현재 이곳은 연구목적 이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 기자는 세종기지 방문 전 외교부와 환경부를 통해 나브레스키 포인트 방문을 정식으로 승인 받았다. 극지연구소가 제공한 사진과 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는 있었지만 직접 나레브스키 포인트를 찾은 언론사는 머니투데이가 최초다. 취재는 연구원들의 연구작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된 상태로 이뤄졌다.
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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