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여의춘추-배병우] 대통령의 경제 실력

바람아님 2018. 9. 8. 08:37
국민일보 2018.09.07. 04:05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고대하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은 오지 않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내용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자체를 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다. J노믹스의 나머지 축인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아무리 강조해도 소득주도성장의 결함을 덮지 못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필수적인 가격변수(임금)와 인센티브를 왜곡한다. 이것이 경제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청와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기다려 달라’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 장 실장의 낙관이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건 청와대가 애용한다는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수준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달 2일 나온 노동연구원의 ‘상반기 평가와 하반기 고용 전망’에 따르면 고용 상황은 평년 수준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 쇼크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하반기에는 고용 개선세가 나타나 취업자가 전년 동기 대비 20만8000명이나 늘어난다고 한다. 올 상반기에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 임시일용직이 급감한 것도 오래 전부터 지속된 구조적 문제일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수준의 보고서에 바탕을 둔 청와대 경제팀의 조언과 보고가 대통령의 말로, 정책으로 확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은 “전체적으로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었다”면서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문 대통령 임기에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자질에 의구심을 품게 된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어떤 통계를 들이대도 이번 정부 들어 고용의 양과 질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주력산업 공동화가 심화되고, 존폐 위기에 몰린 수 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판에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니…. 이런 원고를 쓴 참모는 문책해야 마땅하다.


국민들 불안의 핵심은 이것이다. 참모가 써왔더라도 이따위 원고를 그대로 읽는 대통령은 어떻게 된 건가. 고용과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는 건 통계 오류고 실제로 경제는 제대로 가고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 건가. 한마디로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식견이 너무 얕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근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공직자로서 경제정책을 다룬 경험은 없다. 두 번의 대선후보를 거치며 자습하고 경제 교사들로부터 사사받은 게 경제 공부의 대부분이다. 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은 크게 재벌개혁론과 경제민주화 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출판된 인터뷰 책자에서 그는 최저임금 문제에 ‘생활임금’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인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싱크탱크 ‘국민성장’에 참여한 조윤제 교수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을 들며 주류 경제학과 성장담론에서도 우리(진보)가 보수보다 맨파워가 더 강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사실상 ‘장식용’이었고 문 대통령의 마음은 일찍부터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장 실장 등에게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경제학에 경도된 문 대통령의 경제 인식에 균형을 잡아줄 능력 있는 주류 경제학자의 부재가 ‘문재인 청와대’의 최대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경제정책 파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선 전 문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담을 나눈 심리학자 이나미 교수의 의견도 들어볼 만하다. 이 교수는 ‘문재인은 신뢰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그 신뢰를 거두지 않고 끝까지 가는 성품이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아도 그것을 보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논설위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