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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 기행] (9) 프랑스 세트‥ 은빛해변 유년의 기억들, 조르주 브라상의 詩가 되고 샹송이 되고…

바람아님 2013. 8. 11. 10:19

 


라디오에서 한 사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목소리는 구수하지만 그리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그냥 주절주절 가사를 읊는 태가

마치 노래와 시낭송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이다. 아마추어 뮤지션의 솜씨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 나른한 오후 동네 아저씨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무 그늘 아래서 되는 대로 읊조리는 그런 정제되지 않은 노래 같다면 지나친 혹평일까.

그렇다고 이 사내가 젊은이들을 매혹할 만한 꽃미남인 것도 아니다. 더벅머리에 정돈되지 않은 콧수염을 하고 있으며 입에는

늘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다. 코디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옷차림은 그야말로 무신경의 극치다. 그러나 이 어설퍼 보이는 가수가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마도 이브 몽탕을 능가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르주

브라상은 그런 가수다. 그의 남다른 인기 비결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 같은 가사와 내용의 진정성에 있다.

브라상은 1921년 '랑그독(론강 좌측의 지중해 연안)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아름다운 소도시 세트(Sete)에서 대리석공사 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정말 대책 없는 아이였다. 공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그는 불량끼 넘치는 친구들과 어울려

툭하면 싸움박질을 해댔고 은빛 물결이 넘실대는 세트 해변에서 헤엄치며 놀기를 좋아했다.

통기타 치며 샤를 트르네의 노래를 흉내내는 것,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국 재즈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도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였다. 그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꼈던 과목은 국어(즉 프랑스어)로 특히 시작법 강의 때만큼은 선생님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17세 되던 해, 이 반항적인 소년의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로새겨진다. 그와

어울리던 동네 패거리들이 용돈이 궁하자 도둑질을 하기로 모의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물건을 슬쩍하기로 한다. 계속된 도난사건으로 조그만 도시 세트는 발칵

뒤집혔다. 결국 범인들이 동네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브라상은 집행유예로 감옥신세는 면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그에 따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학교에 발을 끊은 채 자폐의 사춘기를 보낸다. 세트에서 그의 미래는 없었다.

1940년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파리의 숙모집에 기거하며 시작과 작곡에 몰두한다. 2차대전

으로 한때 독일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기도 했던 그를 숨겨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것은

숙모의 친구인 잔느 부부였다. 브라상은 훗날 자신의 최대 히트곡인 '오베르뉴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를 통해 두 은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종전 후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던 브라상은 1952년 파타슈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다. 카바레 주인이자 가수였던

파타슈는 그를 자신의 카바레에 출연시켰다. 브라상은 이를 계기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사춘기 고향에서 저질렀던 잘못을

변호한 '악령',벤치에서 대담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젊음을 노래한 '벤치의 연인들',비오는 날 훔친 우산으로 비 맞고 가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소년을 노래한 '우산' 등 주옥 같은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1967년 브라상은 마르셀 파뇰 등의 추천을 받아 시인 최고의 영예인 프랑스 아카데미의 시작 대상을 수상한다. 그는 가수를

넘어 이 시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향 세트에서 버림받은 불량소년은 세트의 자랑이 되었다.

이런 것을 두고 인생의 역전 드라마라 했던가.

세트는 특히 여름관광지로 유명한데 매년 8월 르와얄 운하에서 벌어지는 선상 창시합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마상 창시합을 연상시키는 이 여름 스포츠는 1743년 처음 시작된 이래 2009년까지 모두 267회 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데 뱃머리에 창든 선수를 태운 두 척의 배가 상대편 배를 향해 돌진,상대방 선수를 물에 빠뜨리는 팀이

승리한다. 그 박진감과 스릴이 마상 창시합은 저리 가랄 정도로 흥미만점이다.

세트 항으로 가려면 기차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넌 후 빅토르 위고 거리와 라자르 카모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그러나

세트의 진면목을 발견하려면 생 클레르 산 쪽으로 가야한다.

부두에 닿기 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큰 길이 나타나고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산 중턱에 세트가 자랑하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시인 폴 발레리를 기리는 박물관이 나타난다.

박물관을 나와 해안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게 된다. 오렌지 빛 지붕의

오래된 집들과 저 멀리 옥색의 바다가 자아내는 상쾌한 콘트라스트는 이곳이 낙원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목가적 풍경의 한 가운데에 산 자의 집이 아닌 사자의 유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장소에 똬리를 튼 묘지가 또 있을까.

브라상이 타계한지 25년이 지난 2006년 세트인들은 생 클레르 산 북쪽 토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조르주 브라상 기념관을 세웠다. 세트인들은 더 이상 브라상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그는 세트인들의 영원한 자랑거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브라상이 불렀던

'악령'은 이제 철부지 꼬맹이가 저지른 아름다운 동화가 되어 지중해의 파도를 타고 온

세계로 울려 퍼진다.

'마을에서 난 악명이 높았네/난 어떻게나 날뛰고 또 얼마나 조용했던가/난 도무지 나 자신도

모르는 존재였지/그렇지만 난 아무에게도 해를 입힌 적이 없어/꼬마로서의 나의 길을 걸었을

뿐이야/그러나 정직한 사람들은 우리들이 걸어간 또 다른 길을 싫어했지/당연히 귀머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해댔어.'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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