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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콜럼버스

바람아님 2018. 4. 23. 15:24


[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콜럼버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서 발견한 삶의 위안


(미디어 승인 2018.04.21 너돌양)


지난 19일 개봉한 <콜럼버스>(2017)는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때문에 <콜럼버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임에도 영화 시작부터 한국어 대사가 나오고, 주연을 맡은 한국계 배우

존 조가 한국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콜럼버스>는 오랫동안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한 코고나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로케이션 배경인 콜럼버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소도시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물의 메카로

통한다.콜럼버스에서 자란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 분)는 건축에 관심이 많은 총명한 여성이지만, 한때 마약 중독자였던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대학 입학을 미룬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케이시에게 어느 날 한국인 이진(존 조 분)이 나타난다.

유명 건축가의 아들인 진은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서울에서 지내다, 콜럼버스 건축물 답사 중 쓰러진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연고도 없는 콜럼버스 땅에 당도한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여성과 건축가의 아들이지만 애써 건축물을 멀리해온 남성이 친해진 계기는 건축이었다.

건축물을 답사하러 오는 관광객 외에는 한적하기 그지없는 소도시에서 낯선 동양인의 존재에 눈길이 가게 된 케이시는

진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소개하며 교분을 쌓아간다.

아버지가 싫어서 건축도 멀리했던 진은 케이시와의 만남을 통해 건축에 다시금 흥미를 가지게 된다.


가족 여행 중 우연히 찾은 콜럼버스에서 에로 사리넨, I.M.페이, 리처드 마이어 등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물들에서

영감을 얻은 코고나다 감독은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건축물들을 통해 위안을 받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케이시와 진은 모두 부모,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케이시에게 건축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동시에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위안을 주는 존재다.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한 감독의 이력을 반영하듯이, <콜럼버스>는 에세이 영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모더니즘 건축물들이 가득한 콜럼버스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 만큼, 엘리엘 사리넨,

에로 사리넨 부자의 노스 크리스천 교회,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어윈 컨퍼런스 센터, 어윈 유니언 뱅크, 콜럼버스 병원 등

미국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근대주의를 뜻하는 모더니즘의 건축은 차갑고 추상적이다.

기존의 도덕, 권위, 전통 등을 부정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속에서 케이시와 진은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을 찾고자

한다. 과연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은 무엇일까. 현실에 지친 두 남녀는 건축을 매개로 대화를 시도하고, 소통을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다.

 
 


엄마가 걱정되어 콜럼버스를 떠나기 싫어했던 케이시가 콜럼버스를 떠날 때까지 건축물로 교류를 맺은 케이시와 진은

한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 같으면 연인 관계로 발전했겠지만,

영화 <콜럼버스>는 케이시와 진 두 사람의 관계를 우정 혹은 호감 정도로 남겨둔다.

두 남녀를 억지 연인으로 만들기보다, 이 영화가 중시한 것은 건축물을 매개로 한 치유와 위안이다.


카메라 워크를 최소한 영화는 건축물들의 풍경을 고정샷으로 보여주며, 건축물들이 흡사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차갑고 딱딱한 건물에 온기를 부여하는 것은 그 건물에 스며 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건축물을 통해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은 사람들을 통해 비로소 건축의 의의가 완성된다.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지적이고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세계 유력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콜럼버스>는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정물화처럼 담아낸 美 모더니즘 건축


(조선일보 2018.04.23 송혜진 기자)



[영화 리뷰] 콜럼버스


"여긴 미국 최초 모더니즘 은행 건물이에요. 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지었죠."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가 한 건물 앞에서 이렇게 말하자 진(존 조)은 "그런 얘기 말고 당신이 왜 이 건물을

좋아하는지 말하라"고 한다. 이윽고 케이시가 다시 입을 연다.

"그냥 마음이 끌려요." 주단처럼 음악이 깔리고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본다.


19일 개봉한 '콜럼버스'는 문을 열고 닫는 법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한국계 미국인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알려진 코고나다(Kogonada)라는 예명의 감독이 만든 장편 데뷔작이다.

1940~50년대 미국 모더니즘 건축사를 빛낸 건물들이 한데 모인 인디애나주 콜럼버스에서 찍었다.

화 대부분의 대사가 두 남녀의 대화라는 점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셋'을,

배경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선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영화는 천천히 화면을 채색하며 다른 길을 걷는다.


비례와 균형이 훌륭하다고 건축물이 완벽해지는 ê±´ 아니다. 케이시(왼쪽)와 진(오른쪽)이 서로의 마음을 열 때 건축물도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비례와 균형이 훌륭하다고 건축물이 완벽해지는 건 아니다.

케이시(왼쪽)와 진(오른쪽)이 서로의 마음을 열 때 건축물도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Superlative Films


주인공들은 처음엔 아름드리나무처럼 뿌리 내린 건축물을 바라보며 맴돌기만 한다.

콜럼버스에서 나고 자란 케이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일한다.

진은 건축학과 교수인 한국인 아버지 아래서 컸지만 그와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그는 아버지가 콜럼버스에 왔다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왔다.


카메라는 애써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박혀 도시와 건물, 그 사이를 서성대는 이들을 그저 지켜본다.

영화 속도는 주인공 속마음의 보폭과도 비슷하다. 머뭇대고 주저하며 한 발씩만 움직인다.

그래서 영화는 종종 정물화나 사진을 정교하게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인다.

고인 빗물 같던 영화가 흩뿌리는 소나기처럼 다가오는 건 두 사람이 마음의 빗장을 풀면서부터다

.

밤늦게 학교 건물에 들어가거나 통유리창 건물 뒤뜰에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두 사람은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종교는 모더니즘 건축이었다.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 말이다."

진이 툭 하고 내뱉는 말은 영화 주제를 함축한다.

완벽한 균형 감각으로 빚어진 도시의 건축물도 그 순간부터 달리 보인다.

영화 막바지, 케이시는 도시를 떠나고 진은 남지만, 그조차 결말이 아님을 관객은 깨닫게 된다.

영화는 문이 닫혀도 또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의 한국어 연기가 때론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눈부신 몇몇 장면만으로도 참아줄 가치가 있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