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박두식 칼럼 - '신뢰의 危機' 맞은 오바마의 아시아 정책

바람아님 2014. 4. 23. 09:36

(출처-조선일보 2014.04.23 박두식 논설위원)

美 '아시아 회귀·재균형' 같은 외교 修辭 총동원해가며 아시아 重視 강조하지만 대부분 말잔치에 그쳐
오바마의 한·일 순방은 미국 향한 불신 털어낼 기회

박두식 논설위원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26일 한국을 찾는다. 5년 새 네 번째 방한(訪韓)이다. 오바마가 한국만큼 자주 찾은 나라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정도다. 서울에 오기 직전에 들르는 일본은 세 번째 방문이다. 오바마의 방문 횟수만 놓고 보면 한·미 관계는 최상의 상태다.

과연 그런가? 미국의 한 싱크탱크는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열린 각종 정책 토론회의 분위기를 '근심(anxiety)'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바마 정부는 자신들이 내건 아시아 공약(公約)을 지킬 능력도, 방법도 없기 때문이란다. 2009년 11월 첫 아시아 순방 당시 오바마는 "미국과 아시아는 운명 공동체"라고 했다. 2011년 하반기 '아시아 회귀(回歸·pivot to Asia)'를 선언했고, 지난해부터는 부쩍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이란 말을 쓰고 있다. 하나같이 대(對)중국 맞춤형 전략이다.

그러나 아시아에 쏟아붓는 미국의 노력은 이런 외교적·정책적 수사(修辭)에 크게 못 미친다. 미국이 이 거창한 약속을 지키려면 그에 걸맞은 외교·군사·경제 자원(資源)의 재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언제쯤 이 정책이 현실화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요즘 미국의 관심은 온통 유럽 쪽으로 쏠려 있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땅이었던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미국 외교의 중심축은 유럽으로 다시 옮아간 듯하다. 미국 백악관이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을 발표하던
자리에서도 아시아 관련 이슈는 잠시 거론됐을 뿐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질의응답이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25일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둔 미국 내 분위기다.

이런 미국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은 사생결단식 외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는 당초 이번엔 일본만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한국 방문 일정이 갑자기 추가됐다. 한국을 제쳐 두고 일본만 찾았을 경우 예상되는 외교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결국 미국은 한·일 과거사 갈등이나 위안부 문제에서 어느 쪽 편도 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어느 쪽 편을 들 여유도 없어 보인다.

미국에 들이는 노력과 정성만 놓고 따질 경우 한·일 경쟁의 승패는 이미 기운 듯하다. 
일본은 미국이 요구하는 정치·경제·군사적 부담을 모두 떠안을 태세다. 미국이 추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미국 중심의 아시아판(版) 경제 공동체다. 일본은 TPP의 핵심 파트너다.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역시 일본이 거의 유일한 
참여국이다. 일본이 여기에 들인 예산만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의 MD는 북한 미사일 방어를 내걸고 있지만 
장기적으론 중국의 위협까지 염두에 둔 광범위한 안보망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TPP 참여를 망설이다가 최근에야 합류를 선언했다. 미국은 10년 넘게 한국의 MD 참여를 종용했지만 한국은
거부해 왔다. 표면적 이유는 MD 참여 비용이 큰 데 비해 실익(實益)이 적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MD 참여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중국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한·미·일 3각 안보 동맹의 한 축인 한국이 미국의 MD 안보망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미국 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외형상 대미(對美) 외교에서 일본에 크게 밀리지 않는 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이런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후진적 행태다.

한·일은 대(對)중국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서도 근본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벌이는 패권 경쟁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북한 변수와 한반도 통일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對)중국 외교가 일본과 같을 수 없다. 
한·미 동맹이 이런 한국의 전략적 고민을 담아낼 폭과 깊이를 갖추지 못하면 머지않아 진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한·일 과거사 갈등 역시 미국의 방관이 길어질수록 위기를 키울 뿐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는 까닭은 미국의 말과 실제가 다른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일종의 신뢰 위기라는 것이다. 
오바마의 이번 아시아 순방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치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부정적 방향으로만 치달아온 
한·미·일 3각 관계의 흐름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의 아시아 회귀는 상당 기간 돌아오는 길의 입구를 찾지 못해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