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아님 2014. 6. 26. 09:04

(출처-조선일보 2014.06.26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성운이는 중학교 음악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실기 시험 노래를 부르다 울어버렸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성운이는 네 살에 엄마가 집 나간 뒤로 엄마를 불러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운이를 인천 어느 보육원에 맡기며 말했다. "네가 4학년 되면 데리러 오마." 
성운이는 보육원 형들의 괴롭힘을 참아내며 4학년 되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5학년이 되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성운이는 중학 2학년 때 보육원을 나와 혼자 자취를 했다. 배고팠다. 하루 한 끼, 학교 급식뿐이었다. 
외로웠다. 자취방에 돌아오면 말 건넬 사람이 없었다. 
한 해를 버티다 다른 보육원을 찾아갔다. "미쳤다"는 소리 들으며 공부에 매달렸다. 
어떤 꿈을 꾸든 꿈에 이르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2008년 '사회적 배려'를 받지 않고 수학·과학 특기자로 서울대 동물생명공학과에 들어갔다. 
생활비와 월세를 버느라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만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김성운은 아르바이트 월급을 쪼개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주며 커다란 행복을 맛봤다. 
4학년 때부터는 보육원 동생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열여덟 살 되면 보육원을 나와 혼자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외로움, 막막함, 두려움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보육원을 돌며 꿈을 말하는 사이 스스로 어릴 적 아픔이 가라앉았다. 
상처를 나누면서 상처가 아물어 간다는 것이 놀라웠다.

▶김성운은 올 초 일반 전형 공채를 거쳐 생명공학 의약품 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입사했다. 
그가 그제 부산서 열린 삼성그룹 토크 콘서트 '열정락서(樂書)'에 연사로 나섰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꿈, 고민을 함께하고 '낙서'처럼 즐겁게 소통하자는 자리다.
 2011년부터 삼성 CEO들과 여러 분야 멘토들이 24만 젊은이를 불러 모은 무대에 신입 사원이 오르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3500여 대학생들 앞에서 희망·나눔·행복을 말했다.

▶김성운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다. 
"나 역시 몇 달 전만 해도 취업을 고민했습니다.
생각대로 안 풀리거나 감당키 어려운 시련이 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새기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반드시 옵니다." 
김성운은 아래 대신 위를 보고, 뒤 대신 앞을 보고, 안 대신 밖을 보고 뛰어왔다. 그러자 불행도 제풀에 지쳤다. 
스물여섯 살 젊음이 하도 눈부셔서 더 보탤 말이 없다. 
이형기의 시 한 줄 말고는. '행복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실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각주 : 詩人 이형기(李炯基)>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