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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림+신뢰의 정보… 인터넷 압도하는 '인포그래픽북' 뜬다

바람아님 2017. 5. 6. 23:28

(조선일보 2017.05.06 양지호 기자)


[아이·부모 함께 읽는 '가족의 책'] 


'인체 완전판' 이미지만 2000개… 한국인 의사 5명 감수로 신뢰 높여 

'카 북'은 다루는 차만 1200종… 인터넷 검색보다 정보 밀도 높아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어린이날 선물이면 행복해 했던 녀석들이 한두 살 나이를 먹더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성교육 실태를 생각하면, 아빠들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 

인터넷 검색은 영 못 미덥다. 이럴 때 '인포그래픽북' 또는 '정보그림책'을 꺼낸다.


가정의 달 5월. 아이는 그림을 보고 부모는 텍스트를 함께 읽는다. 

독자 폭을 어른으로까지 넓힌 명품(名品) 정보그림책은 수천 장의 컬러 사진과 정규 교육 과정을 웃도는 정보량을 담아낸다. 

펼치면 50~60㎝에 육박하는 '바다 같은' 판형. 부모와 아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보기 적당하다.



◇화려한 이미지, 압도적인 정보


인포그래픽북, 지식·정보그림책, 정보그림책 등으로도 불리는 이 책들은 도감과 백과사전의 중간 지대에 있다. 

종이책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금, 어느 한쪽이라도 부실하면 경쟁력은 사라진다. 

사진·그림·인포그래픽을 통해 도감 이상의 이미지를 확보하고 활자로는 인터넷 백과사전 수준을 넘어서는 정보를 담았다.

영국 돌링 킨더슬리(DK)의 책을 펴보자. 

'인체 완전판'(사이언스북스 刊)은 크고 작은 이미지가 무려 2000개가량. 무게가 2.7㎏에 달한다. 

인체에 있는 200여 개의 뼈, 600개가 넘는 근육, 15만㎞의 혈관을 다루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국 의사 앨리스 로버츠. 현지 의사 11명이 내용을 감수했고, 국내 번역자 3명이 달라붙었다. 

한국어판 감수는 현역 의대 교수 5명이 따로 맡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내놓은 '비행기 대백과사전'은 19세기 글라이더부터 미래 비행기까지 800여 종의 하늘을 나는 탈것을 다뤘다.

저자 숫자는? 13명. 화려한 이미지는 눈을 즐겁게 하고, 전문가들이 글을 쓴 정보 신뢰도는 높다.


◇종이책 매력 극대화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인터넷과 경쟁한다. 정보그림책은 이미지 크기와 편집으로 승부를 건다. 

커봐야 5~6인치에 불과한 스마트폰 스크린은 펼치면 24인치 모니터와 맞먹는 정보그림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은 "모든 정보가 검색이 가능한 시대에 출판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며 

"지면으로 펼쳐서 보여주는 것은 종이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책이 '한 덩치'하는 이유다.


‘인체완전판’에실린인간엉치뼈와꼬리뼈.‘ 비행기 대백과사전’에 실린‘시대를 앞서간 항공기들’에서는 맨 아래의 꼬리날개 없는 독일 글라이더‘호르텐 H6 V2’가 인상적이다. 신라 석굴암전실(前室) 부조의 의미를 설명하는‘한국생활사박물관5’.‘ 인체 원리’에서 상처 난 피부가 재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맨 위부터 각각의 설명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과 인포그래픽이 시선을 앗아간다.


‘인체완전판’에실린인간엉치뼈와꼬리뼈.‘ 

비행기 대백과사전’에 실린‘시대를 앞서간 항공기들’에서는 맨 아래의 꼬리날개 없는 독일 글라이더‘호르텐 H6 V2’가 인상적이다. 

신라 석굴암전실(前室) 부조의 의미를 설명하는‘한국생활사박물관5’.

‘ 인체 원리’에서 상처 난 피부가 재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맨 위부터 각각의 설명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과 인포그래픽이 시선을 앗아간다. /사이언스북스·사계절


책을 무작위로 펼쳤을 때 펼쳐진 두 페이지 안에서 주제 하나가 완결된다는 것도 강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수시로 펼쳐보기 좋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싫증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관 주제를 함께 볼 수 있는 것도 강점. 

인터넷에서 스포츠카 '페라리'를 검색하면 해당 차종만 주르륵 뜬다. '카 북'은 1200종의 차를 묶었다.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종이책으로 보는 편이 훨씬 정보를 압축적으로, 검색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며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보의 깊이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전집 백과사전류와 달리 특정 주제를 깊이 파고든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아이들이 한 면씩 읽다가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적성을 찾아가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꾸준한 강자 정보그림책


출판 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책은 판매 부수 1만권을 넘기면 영화 300만 관객 돌파 수준, 

10만권을 넘기면 1000만 영화 수준'이라는 우스개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도 1만권 넘게 팔리며 인기를 얻는 정보그림책은 꾸준히 나온다. 

사이언스북스가 '대백과사전' 시리즈로 펴냈던 '인체 완전판'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1만5000부가 넘게 나갔고 

자동차 작동 원리와 1200여 종의 자동차를 망라한 '카 북' 역시 1만부 넘게 판매됐다. 

사이언스북스는 지난달에는 새 시리즈 '인포그래픽 팩트 가이드' 첫 권으로 '인체원리'를 번역 출간했는데 한 달 만에 

3000부가 판매됐다. 출판사 살림어린이는 '살림 지식 그림책' 시리즈를 새로 시작했다. 

첫 책 '우리몸 대탐험'이 지난달 처음 나왔다.


DK '세상의 모든 지식' 시리즈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나오는 정보그림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출판사 지식갤러리 

관계자는 "DK 등 현지 출판사는 주로 2030을 대상으로 하지만 국내 구매자는 중·고등학생 학부모가 많다"며 

"가격이 높아 한 번에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판매는 꾸준한 편"이라고 말했다.


'세밀화 도감' '생활사 박물관'… 국내 책들도 눈길


정보그림책은 필진과 감수자가 여럿 참여하고 이미지도 많이 들어간다. 

기획·제작비가 일반 단행본보다 큰 편. 그래서 출판사 단독 제작보다 해외 출판사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제작 단가를 

낮추는 곳이 많다. 그런 와중에도 국내 필진을 통해 꾸준히 정보그림책을 내는 출판사도 있다.


사계절 출판사는 2000년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국사학과)가 감수한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2010년대에는 '구슬치기로 시작한 세계 지도 여행' 등 '지도 여행'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최일주 사계절 아동교양 팀장은 "이미지 확보, 내용 감수 등 제작 과정에서 품은 많이 들지만 의지만 있다면 

큰 제작비 상승 없이도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 보리는 약 20년 전부터 '세밀화 도감' 시리즈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민물고기, 갯벌, 새, 버섯, 잠자리 등 동식물을 주제별로 세밀화로 그려 담았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나들이도감' 시리즈는 바깥 나들이 할 때 들고 가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