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한국 빠진 동북아 '頂上 외교전'
국민일보 2019.04.23. 04:05
작년 이맘때 동북아에서 불꽃 튀는 외교전이 펼쳐졌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물꼬를 튼 남북화해 국면은 4월 27일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이 흐름은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외자였다. 1년 뒤 같은 공간에서 연쇄 정상(頂上) 외교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북한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4~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을 중·러와의 동맹 공고화로 돌파하려는 복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중·러 정상회담을 한다. 북·중·러에 맞서는 미·일 동맹에서는 국외자였던 아베 총리의 입지 격상이 두드러진다. 아베 총리는 4~6월 석 달 연속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 오는 26일 워싱턴DC에서 미·일 정상회담 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 생일 축하연에 참석하며, 2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5월 1일 나루히토 신임 일왕 즉위식, 6월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답방한다. 트럼프는 G20 회의 참석 뒤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일본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공동대응을 위해 화해 분위기로 돌아섰다. 지난 15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오는 6월 시 주석의 일본 방문 일정이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5개국이 치열하게 벌이는 정상 외교전에서 문재인 대통령만 ‘외톨이’다. 아베 총리는 오는 6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정상과 개별 양자 회담을 추진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그 명단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대중(對中) 관계도 좋지 않다. 양국관계에서 목의 가시 같은 사드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이다. 시 주석 방한도 때를 놓쳤다. 오직 북한만 바라보는 정부의 ‘북한 올인 외교’의 귀결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젠 북한마저 문 대통령을 ‘오지랖 넓다’고 비난하는 지경이다. 여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자초한 ‘외교 고립’이라는 점에서 외부 탓하기도 힘들다. 배병우 논설위원 ---------------------------------------------------------------------------------------------------------------------------------------------------
<사설>美·日은 철통동맹 확대, 文정부는 나홀로 '판문점 쇼'
문화일보 2019.04.22. 12:00
이번 주는 동북아 외교·안보의 ‘슈퍼위크’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가 많지만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미·일 정상은 26일 워싱턴에서, 중·러 정상은 26∼27일 베이징에서 회동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은 1년 전 김 위원장과의 4·27 판문점 회담 이후 세계적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우려했던 대로 북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은 없었고, 이젠 외화내빈(外華內貧)도 넘어 ‘외교 외톨이’를 걱정할 정도의 한계에 봉착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미국과 일본은 철통 같은 안보 동맹을 더욱 확대·강화하는데, 문 정부는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일 양국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외교·국방 장관(2+2) 회담을 갖고 ‘사이버 공격’도 양국 안보조약 적용 대상에 포함하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을 재확인했다. 특히, 양국 안보의 최우선 순위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FFVD)가 있음을 천명하고, 그 대상도 핵무기는 물론 모든 대량파괴무기(WMD)의 전면 폐기임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런 기조 위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5월과 6월 잇달아 일본을 방문한다. 이런 미·일 밀착은 한·미 관계와 대조적이다. 미·일 2+2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두 번째인데, 한·미 간에는 문 정부 들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워싱턴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과 단 2분 단독회담을 했을 뿐이고,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초청에 대해서도 사의만 표했다. 그렇다고 중국과 북한이 문 정부를 배려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3·1절 100주년 공동 기념행사를 거부한 데 이어 코 앞에 닥친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에 대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23일 오후 귀국하지만, 특별한 외교 일정은 없다고 한다. 그대신 정부는 27일 판문점 선언 1년 기념 퍼포먼스를 갖기로 했다. 한국 외교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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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신범철] 北의 적반하장과 南의 선택
국민일보 2019.04.22. 04:04북한의 발언 수위가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오지랖 발언도 계산된 행보로 봐야 한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이 보여주듯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자 그 효용가치가 다한 것으로 본 것 같다. 한발 더 나가서 이젠 북한 편을 들라고 하니, 소위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든다는 의미의 이 말에 대해 조선시대 학자 홍만종은 평론집인 ‘순오지’에서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해석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바로 그러하다. 기껏 배려해주면서 대화의 판을 깔아주었더니 오히려 성내면서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도 정상회담을 갖지 못하는 철저한 고립을 겪고 있었다. 그런 북한을 평창에 부르고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면서 분명치 않았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우리 정부가 담보해주었다. 이 기회를 활용한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드러나는 북한의 행보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협상이 아니면 대화를 않겠다는 것인데, 결국 핵무기를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직도 북한의 속내를 읽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잘못된 판단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화가 지속되기만 하면 평화가 오고 대화가 중단되면 큰일나는 것처럼 걱정하는 ‘대화만능주의’적 사고다. 동시에 운전자니 중재자니 하는 거창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정부의 생각과 반대로 돌고 있다. 먼저,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니라 북한의 의도다. 북핵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지만 대화만 갖는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있어야 하고 그 순간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불가피하다. 때로는 압박을 통해 북한에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 협상의 운전자나 중재자가 아니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 중 우리를 제외한 누구도 운전이나 중재를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하려 했다. 평화세력임을 과시하려는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몰랐다. 그러다보니 상황 변화에 따라 운전자에서 중재자로, 그리고 다시 촉진자로 이름만 바꾸게 되고, 끝내 북한에 오지랖 넓다고 훈계나 듣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정부가 제대로 일하려 했으면 스스로를 낮추고 조용히 접근했어야 했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스스로를 낮추고 미국과 소련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였다. 당시 그가 운전자나 중재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입지를 내세웠다면 독일은 아직도 분단된 상태로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대화를 주도하지 않았다면 이만한 진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화의 시작도 그리고 지금 대화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도 모두 북한의 선택이었다. 이미 북한은 큰 손실 없이 주변 관계를 개선했다. 중국과는 순치(脣齒)의 관계를 회복했고 이제 곧 러시아와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한의 비핵화 개념도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판도라 상자를 열어본 성급한 행보로 인해 북핵 문제는 이제 더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정부는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행보를 반복하면 북한만 바라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정부로 기록될지 모른다. 당장의 욕심을 버리고 반대를 봐야 한다. 거창한 역할보다는 겸손한 실리를 찾아야 한다. 북한이 아닌 동맹 및 파트너와의 관계를 먼저 심화시켜야 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를 만들거나 때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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